송재룡 - '이미지 정치'의 정치학을 넘어서


동문기고 송재룡 - '이미지 정치'의 정치학을 넘어서

작성일 2006-09-13

'이미지 정치'의 정치학을 넘어서

-- 송재룡 (경희대 사회과학부 교수) --

이미지 정치의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준 영화로 로버트 드 니로와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정치풍자 영화인 '왝 더 독(Wag The Dog)'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현직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때문에 위기에 몰린 백악관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정치해결사인 브린(로버트 드 니로)과 할리우드 영화제작가 모스(더스틴 호프만)를 부른다. 두 사람은 대 국민 이미지조작을 모의한다. 이들은 최첨단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총동원해 긴박한 전쟁현장 시나리오를 극적으로 재현해 실제 상황인양 전국에 방송해 국민 여론의 방향을 틀어 버리는데 성공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일거에 잠잠해지고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상승한다. 결국 현직 대통령은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되고, 이 희대의 이미지 조작 사기범들은 세상 정치의 가벼움을 조소한다. 이 영화가 미국식 정치현실을 과장되게 풍자한 것이기는 하지만, 현대인의 매스미디어 의존성과 이를 통한 정치광고 및 이미지 조작의 가능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현대인의 매스미디어 의존성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이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모니터와 같은 사각상자를 통해 노출되는 가공할 양의 이미지를 대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우리는 직접 세상을 경험하고 인식하기보다는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이미지적인 정보들을 재구성해 인식하고 이해하고 판단한다. 그만큼 미디어를 통한 대중 민주주의 조작과 정치적 이미지 메이킹이 가능해졌다. 지난 91년 초 일어난 걸프전을 두고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가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CNN을 위시하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 이미지의 모사성(재현성)을 지적하며 한 말이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이 '이미지 정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보다 앞서,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정치인의 연예인화'라는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 현상에 대한 말들이 오간지 꽤 됐다. 그 동안 우리 정치의 생태가 적지 않게 변했지만, 텔레비전 카메라 앞의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 만큼 극적으로 변한 것도 없을 성 싶다. 가만히 있다가도 TV카메라만 다가오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긋이 웃는다든지 또는 괜스레 옆의 정치인과 중요한 내용이라도 주고받는 듯 귀엣말로 소곤대는 듯한 다정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국회의 집단 난투극 장면만 제외한다면, 적어도 겉보기에는 오늘의 정치인들은 근엄함과 뻣뻣함 같은 권위주의적 이미지에서 부드러움, 유연함 그리고 다정함 등과 같은 탈권위주의적 이미지로 탈색됐다. 적어도 보기좋은 떡이 되기는 한 것이다.

이미지 정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평결은 후보자들의 정책적 차이나 정치적 능력이라는 알맹이는 빈약하고 단지 껍질만 화려한 그림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그동안 선거기간 중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서 미디어를 조작통제해 온 미디어 정치의 역사를 조망할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 온다.

하지만 여기서 좀더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미지 정치'에 대한 부정적 평결의 분위기가 현실에 대한 단선적 또는 양자 택일적 논리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이미지의 바다에 살고 있다. 이 현실에서 정치영역이라고 비껴 갈 수 없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 신세대에게 있어 이미지는 해당 후보자의 일상의 표상적 가치를 드러내는 지표일 뿐, 후보자의 속 깊은 정치능력이나 가치, 덕목과는 직결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볼 때, 이미지 정치논란 속에는 일종의 세대간 문화갈등의 소지가 내재돼 있음을 느끼게도 된다.

한마디로, 이미지 정치의 부정성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미지 정치 자체에 대한 (비)호감의 태도가 아니라 미디어 정치의 정치학을 싸고도는 이른바 '떼지어 몰리는' 집합적 정서문화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 경인일보 2006년 5월 1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