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일 - 묻지마 범죄의 정신분석


동문기고 장환일 - 묻지마 범죄의 정신분석

작성일 2006-09-12

[테마진단] 묻지마 범죄의 정신분석

장환일 (경희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근래에 흉악한 범죄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여성 어린이 노인 등 힘이 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와 연쇄살인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범죄의 공통점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범행, 소위 '묻지마 범죄'라는 것이다. 범행 동기가 모호하고 그 목적도 분명하지 않다.
이렇듯 가공할 사건들을 접하면서 더욱 놀라게 되는 것은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에게서 아무런 죄책감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힘이 약한 여성, 철모르는 아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다치게 해놓고서 후회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철모르는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왜 그랬냐고 따지면 '그냥' '그러고 싶어서' '모르겠다' 식으로 얼버무리는 수가 많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대답이 그렇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아무런 목적의식도, 죄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범죄자들의 문제점을 개인적 차원에서 정신병리와 사회적 차원에서 병리현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고, 책임감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못하며, 학습을 통해 배우는 사회생활 적응력이 결여돼 있다. 인격 형성 과정에서 본능을 제어할 초자아의 기능이 미약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며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른 후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인격장애가 형성된 것은 선천적인 원인도 있지만 성장과정에서 가정환경이나 주변 사회적 환경 등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정신장애자들이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경증이나 정신병만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알고 있고, 이러한 인격장애가 치료가 필요한 병임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이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진작 이들의 성격적문제점을 파악하고 치료를 받도록 인도했다면 끔찍한 범죄로 연결되지는 않았을 수 있다. 평소에 성격상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설마 하고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재난을 사전에 예방하는 습관이 부족하다. 천재지변이나 건축물이 붕괴되는 등 사고 예방에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 문제를 예방하는 태도도 전혀 되어 있지 못하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인격장애가 한 개인의 정신병리를 나타내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의 심각한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예방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경제적으로 발전해서 웬만큼 살게 되었으면 한 개인과 사회 전체 정신건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 그러한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노력은 보이지않는다.

근래에 와서 반인륜적 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의 병리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너무나 물질적인 성장과 가시적인 발전에만 몰두해 왔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 경제이고 정부나 정치인들이 내거는 이슈는 온통 경제 살리기뿐이다. 선거철에 접어들면서 나오는 공약들을 보면 경제발전, 도시건설, 부동산 투기 잡기 등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업적들만 내세우고 있다. 그 많은 후보 중에서 우리 사회의 정신문화를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를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우리 사회의 정신문화는 실종되고 말았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정신적으로 어떻게 성숙할 것인가, 인간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도덕, 윤리, 가치관, 인생관 등에 대한 관심은 실종된 지 오래 되었다.

물질만능 사회에서 정신문화의 황폐화가 초래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황폐해지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그러한 상황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양산되고,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될 기회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보건정책을 확대해 인격장애 등 정신병리를 가진 사람들이 전문적인 치료를 받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정신문화를 중요시하고 인간교육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 지금과 같이 물질만능 풍조만 계속된다면 앞으로 인간에 의한 범죄는 더욱 확산되고 흉폭해질 수밖에 없다.

- 매일경제 2006년 5월 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