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문병준-한·미 FTA, 미국 균형감각 절실하다
<포럼> 한·미 FTA, 미국 균형감각 절실하다
- 문병준 / 경희대 교수·경영학 -
미국이 이미 타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에 대해 이른바 그들의 ‘신통상정책’을 반영하기 위한 재협상 주장을 제기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간 신통상정책이 합의된 5월11일 이후 한·미 양국은 긴장감 속에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15일 ‘2007년 서울·워싱턴 포럼’ 오찬에서 “미국과 한국은 수주일 안에 보다 강력한 노동·환경 기준을 반영하기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미 행정부와 의회가 신통상정책을 한·미 FTA에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앤드루 퀸 주한 미국 대사관 경제고문도 “한국과 미국은 노동 및 환경 분야에서 더 깊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미국 측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재협상 ‘절대불가’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송민순 외교통상장관은 16일 “미국 측으로부터 재협상 제의를 못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같은 날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예방을 받고 “재협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는 재협상에 응할 경우 반미 감정을 자극할 수 있고 대내적인 설득 명분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일단은 재협상 불가론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도 같은 날 “미국이 일방적인 내용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면 협상을 깰 수도 있다”고 한 바 있다.
이틀 후 정부의 입장에는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18일 “미국이 한·미 FTA에 대해 공식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양국에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다면 일단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일방적 재협상 요구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면서도 “그러나 미국이 요구하는 내용이 양국에 모두 이익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엄밀히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김 수석대표는 또 “미국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면서 노동과 환경 분야에서 양국 간에 더 공통되고 강제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재협상 요구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해 보면 정부는 미국 측이 의회의 비준동의 등 어려움을 이유로 한·미 FTA의 재협상을 고집하면서 상황이 불가피하게 전개될 경우에 대비, 상황별 대응책을 아울러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가 국가 간 합의의 신뢰성과 협상의 근본을 훼손하는 처사란 점이다. 왜냐하면 미국측이 재협상 필요성의 논거로 내세우는 이른바 자국의 신통상정책이란 것이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에 결정된 자신들의 국내 여건상의 미세한 변화에 불과한데, 이를 근거로 국가간 협정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일방주의적 산물로 비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미국 측의 일방적 재협상 요구로 힘겹게 타결된 한·미 FTA가 비준도 되기 전에 그 미래가 불투명해져서는 안 된다.
앞으로 한·미 FTA의 순조로운 비준과 발효를 위해서는, 미국은 FTA 파트너 국가에 국제적인 노동·환경 기준을 준수하도록 요구한다는 정책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국가마다 특수한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다수의 한국민은 한·미 FTA를 지지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미 두 나라가 서로 존중하는 호혜 평등의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지 미국이 일방주의를 고수할 경우에도 계속 유효한 것은 결코 아님을 인식, 정책 추진상의 균형 감각을 회복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문화일보 2007-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