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본말 전도된 자본시장통합법


동문기고 권영준-본말 전도된 자본시장통합법

작성일 2007-06-15

[한국시론] 본말 전도된 자본시장통합법

- 권영준 / 국제․경영대학 교수 -
 
자본시장 육성을 위한 순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은 본말이 전도된 끼워넣기식 결제시스템 문제로 인해 온갖 암투를 부르고 있다.
현재 소규모로 난립하고 있는 증권사를 대형화, 한국판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으로 양성하기 위해서 재경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자통법이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는 바람에 연일 밥그릇 싸움이 날 새는 줄 모른다.

그 동안 자통법이 없어서 대형 투자은행이 못 만들어진 게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종금사를 정리하면서 은행에 넘겨준, 어음업무를 제외한 투융자 및 채권발행업무 등을 증권업과 결합시켜 투자은행으로 발전시키려 했으나 증권사들은 단순 위탁매매업이 전체 영업의 65%를 넘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증권회사 영업시장에 미꾸라지들을 위협할 정도의 대형 메기가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실질적 시장 리더역할을 할 대규모 기업집단 소유인 삼성증권이 삼성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 고리 때문에 대형 금융그룹으로 독자적 발전을 할 수 없는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단순히 증권사의 외형만 키운다는 목적으로 자통법 속에, 결제시스템의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은 증권사에도 지급결제시스템 참가를 허용하는 입법안으로 논란을 주도하고 있다.

● 증권금융, 지방은행화가 바람직

정부는 대표 기관인 증권금융을 통해 소액결제시스템만 허용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금융이 주고객인 증권사의 안정성과 결코 무관할 수 없을 뿐더러, 말이 소액결제이지 개인과 기업 등 금융기관의 대고객 거래는 모두 소액결제시스템으로 정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용어와 달리 결코 소액이 아니다.

한국은행과 은행연합회의 반대로 일단 국회 재경위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재경부는 직접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하고 한은은 제2금융권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려는 목적의 기형적 타협안으로 해결하리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세계에 유례가 없는 편법적 행태로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것이다.

진정 소비자 편익을 위해 증권사를 지급 결제에 참가시키려면 증권금융을 지방은행으로 전환, 정상적 은행감독을 하면 안정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정도를 걷지 않고 자꾸 편법을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참여정부는 유난히 관료들의 편법적 해결방안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생보사 상장문제는 물론이고, 대형 금융투자은행의 출현을 위한다는 자통법도 우는 아이한테 젖 준다는 식으로 선심을 쓰면서 국민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개연성이 있는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을 건드리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된다.

● 대형 투자은행 나오기 어려워

설사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면서까지 증권사의 결제참가를 허용한다 해도 정부가 원하는 대형 투자은행의 출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대규모 투자업무가 영업의 중심이 되는 대형 투자은행은 나타나지 않고 위탁매매 중심의 증권사가 수신 외형만 커진, 은행과 유사한 기형적 증권회사를 양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대형 투자은행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재벌 총수의 지배구조에 대한 결단과 전략적 선택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사이에 정부가 재벌의 총대를 메고, 정치권은 들러리를 서고, 언론은 수수료 분쟁이 초점인 양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

자통법 논의가 정도를 벗어나 있는 사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서울에서 금융빅뱅이 가능할까?(2006)'라는 보고서에서 자통법이 간과한 이해 상충문제를 지적하면서 자산운용업과 증권업의 분리를 강력히 권고했다. 지금이라도 금융관료는 정도를 걷고 청와대는 관리감독을 제대로 해야 국가적 소탐대실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일보 2007-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