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조현용-‘하루를 배워도 선생’이라는데…
[독자 칼럼] ‘하루를 배워도 선생’이라는데…
스승에게 스승의 날은 부끄러운 날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자주 연락 못해… 또 제자의 아픔을 몰라 미안한 날
- 조현용(국문86/ 38회) / 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
스승의 날을 없애자, 다른 날로 옮기자 하는 이야기가 5월만 되면 나온다. 강단에 서는 나로선 참 민망한 얘기다.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스승의 날을 무척 부러워한다. 스승에 대해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날을 정하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스승이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찾아보면 ‘무당’과 관련이 있다. 요즘 사람이 생각하듯 단순히 굿을 하는 ‘무당’이 아니라 한 사회를 이끌어 가던 제사장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고대 사회는 제사장이나 족장이 하나였던, 즉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회였으므로 족장이자 제사장이 오늘날 스승의 역할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스승, 즉 제사장은 부족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고, 인생의 지침을 주기도 하는 존재였다. 또 때론 추상같이 엄한 모습이기도 했다. 항상 모범이 되어야 하고, 동시에 따뜻한 모습이어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스승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다.
스승의 날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자꾸 눈이 문으로 가게 된다. ‘기다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찾아 올 제자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노크 소리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다 끝내 찾아오지 못한 제자에게는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제자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는 것은 스승의 바른 모습이 아니다. 가르치고 나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제자의 뒷모습을 늘 지켜보고 때론 몰래 다가가기도 하면서 잘 살고 있는지, 성실히 살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항상 애틋해 하고, 더 잘 해주지 못한 선생의 부끄러움을 가슴으로 새길 노릇이다. 제자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어찌 제자들의 탓으로 돌리겠는가?
중국에는 ‘하루를 배워도 선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게 사소한 가르침을 준 분이라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언젠가 중국에서 열린 학회에 갔을 때 내 수업을 들었던 중국의 한국어학과 교수들이 나를 깍듯이 스승으로 대접해서 몸 둘 바를 몰라 했던 기억이 있다. 몇시간 한국어 교육에 대한 특강을 했을 뿐인데도 그들은 제자로서의 예의를 갖춰줬다. 새삼 가르치는 것이 두려워지는 느낌이었다. 하루를 가르치더라도 정성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루를 가르쳤어도 제자’라는 생각으로 학생들을 만나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가르치기를 단 하루만 하였더라도 늘 생각하고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스승에게 있어야 한다는 깨침을 얻었다.
스승에게 스승의 날은 부끄러운 날이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제자에게 미안하고, 자주 연락 못한 제자에게 미안하고, 제자의 아픔을 몰라서 미안한 날이다. 찾아오지 못한 제자들에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연락을 띄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주저하지 말고 말해다오. 함께 기쁨도 아픔도 나누는 선생이 되려고 노력하마’라고.
[조선일보 2007-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