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대북 지원을 ‘核해결 지렛대’ 삼아야


동문기고 정진영-대북 지원을 ‘核해결 지렛대’ 삼아야

작성일 2007-06-08

<포럼> 대북 지원을 ‘核해결 지렛대’ 삼아야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회의는 일정이 하루 연장돼 지난 22일 끝났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철도연결구간 시범운행 날짜를 확정하고, 남한의 경공업 원자재 지원과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 협력, 한강 하구 골재 채취를 위한 실무 접촉 등이 담긴 합의문을 내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두 가지 사안은 어정쩡하게 마무리됐다. 우선, 열차 시범운행을 위해 필요한 군사적 보호조치에 대해서 쌍방은 적극 협력한다는 선에서 타협했다. 5월17일에 시행하기로 합의했지만, 지난해 무산된 경험에 비춰보면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초미의 관심사였던 대북 쌀 지원 문제는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5월 말에 제공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이와 관련, 우리 측 대표단은 2·13합의가 이행돼야 쌀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매우 모호하다. 열차의 시범운행이 되지 않으면 8000만달러에 달하는 경공업 원자재 지원은 하지 않을 것인지, 2·13 합의에 따른 핵(核)시설 폐쇄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1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쌀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인지가 명백하지 않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결국 한국 국내 정치의 과제로 떠넘겨졌다고 볼 수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 내부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2개의 나라’로 갈라져 있다. 진보 진영은 대북 지원을 북한핵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조차 반대할 정도로 무조건 지원을 주장한다. 이에 비해 보수 진영은 성급한 대북 지원이 북한으로 하여금 2·13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경추위의 합의는 북한의 전향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국내 정치권과 언론에서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2·13 합의 이행이 상당히 미루어지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여 있는 북한 자금 문제 해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북한이 BDA로부터 2500만달러를 인출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렇다면 벌써 해결됐을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단지 2500만달러가 아니다. 국제금융기관에서 정상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지위를 원하고 있다. 외국 은행에 계좌를 열고 마음대로 거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북한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외화를 벌고 돈세탁을 하고 있다는 오명을 씻지 않는 한 해결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이 BDA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한,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인 2·13합의의 이행마저 매우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런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하면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이것이 6자회담을 진전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단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북한 당국은 한국의 경제 지원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특히 6자회담에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북한은 열차 시범운행을 형식적으로 실시하고 경공업 원자재와 쌀 지원을 모두 받아내려 할 것이다.

그리고 2·13합의를 이행하는 것을 보지도 않고 북한에 줄 중유부터 준비했다가 큰 손해를 본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 조급증을 볼 때 북한의 이러한 의도가 결국은 또 관철될 것이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북한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대북 지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대북 지원이 북핵 문제 해결에 방해가 아니라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화일보 2007-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