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금성 이야기


동문기고 김상준-금성 이야기

작성일 2007-06-07
[과학칼럼] 금성 이야기

- 김상준/ 경희대교수·우주과학 -

요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벚꽃을 시샘하는 봄철 특유의 비바람과 이따금씩 오는 황사가 하늘을 덮어 맑은 밤하늘을 보기 힘들다.

그러나 주의깊게 살펴보면 저녁 8시쯤 가끔 구름 사이로 서쪽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별은 우리 지구와 크기가 비슷하고 태양 쪽에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금성이다.

금성은 밤하늘에서 달을 제외하곤 가장 밝은 천체이다. 너무 밝아서 해가 지기 전에도 자세히 보면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밝다. 금성이 지평선 위에 있고 대기가 불안정할 땐, 이 번쩍거리며 빛나는 금성은 색깔도 수시로 변할 수 있으므로 미확인 비행물체(UFO)로 오인된 적도 종종 있었다.

밤하늘에 눈부시게 빛나는 금성을 보고서 고대 유럽 사람들은 아름다운 미의 여신 비너스(Venus)를 생각했다.

20세기 들어서는 금성이 지구와 크기가 비슷하고 지구보다 태양 쪽에 조금 더 가까이 있으므로 그곳은 북극과 남극 같은 추운 곳이 없는 열대지방만 있는 행성으로 생각되어 지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그곳이 아마도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따라서 인류가 가서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찬찬히 빛나는 별 ‘비너스’-

필자가 대학 다닐 때만 하더라도 그 당시 세계 최대의 지상망원경으로 금성을 살펴보아도 금성은 두꺼운 구름으로 덮여 있어 표면의 모습을 식별할 수 없었다.

금성 표면의 미스터리는 1970년대와 80년대 초에 걸친 구소련의 여러 차례 인공위성 탐사에 의하여 비로소 베일이 벗겨졌다.

처음 구소련이 탐사선을 금성 표면에 내려 보내자 웬일인지 표면에 닿기도 전에 기기가 금방 작동을 멈추곤 했다. 따라서 구소련은 아주 단단하고 열과 높은 기압에 견디는 탐사선을 만들어 금성 표면으로 내려 보냈다. 다행히 표면에 안착한 탐사선이 관측결과를 보내왔을 때 그것은 우리의 기대를 깨뜨리는 정도를 넘어서 우리를 경악시켰다.

즉 낙원이라고 생각되던 금성 표면은 납이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섭씨 477도가량 되었다. 그 온도는 태양에 가장 근접해 있는 수성 표면의 온도보다도 높았다.

표면의 대기압은 몸도 가누기 힘든 90기압이나 되는 고압이었고, 대기는 우리가 숨도 쉴 수 없는 탄산가스로 꽉 차 있었다. 또한 금성의 구름은 지구의 물구름과는 달리 강한 산의 일종인 황산도 섞여 있었다. 표면에 안착한 그 탐사선은 결국 1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통신이 두절되었었다.

1970년대 이미 천문학자들은 멀리 떨어진 별들의 진화과정을 거의 다 밝혔었는데, 지구와 가장 가까운 금성 표면의 실상을 알지 못했던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우주의 신비는 철저한 과학적 실험, 관측과 수학적 논리로만 그 베일이 벗겨질 수 있고, 겉보기 느낌이나 영감으로는 우주의 정체를 거의 알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행성천문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만약 지구를 금성궤도로 옮겨 놓는다면 지구도 금성과 같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즉 태양에 좀더 가까이 있으므로 바닷물의 증발이 활발히 일어나고, 공기 중에 수증기가 많아지면 온실효과가 증가하므로 기온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면 바닷물은 더욱 빨리 증발함으로써 온실효과와 기온은 더욱 높아진다.

-불과 탄산가스 가득한 실상-

결국 바닷물은 다 말라 버리고, 높은 기온으로 인하여 석회석 따위의 암석에서 혹은 숲 따위의 대형 화재로 탄산가스가 다량 공기 중으로 투입되고 표면기압은 거의 100기압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 탄산가스도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중요가스이므로 기온은 더욱 증가하여, 이젠 암석 속에 있는 유황성분까지 대량 공기 중으로 유입되어 기존의 수증기와 화합하여 황산구름을 만들어 지구도 금성과 같은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옥은 유황이 타고 있는 불구덩이라고 상상해 왔는데, 금성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하던 지옥에 비하여 손색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경향신문 2007-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