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노동일-리더십의 성공과 실패
[fn시론] 리더십의 성공과 실패
- 노동일 (법학77/ 29회) / 경희대 법대 교수·시사평론가 -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세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3개월 전에 비해 2배 이상인 30%대의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덕분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성급하지만 헌정 사상 처음으로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FTA 비준 과정, 개헌 발의, 남북정상 회담 등으로 이어질 노 대통령의 어젠다가 국정의 중심축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국민이라면 현직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며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는 상황은 반길 수 없다. 현 정부를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해야 정권 탈환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야당의 사정은 그들만의 문제일 뿐이다. 노 대통령이 연일 영어교육, 대입제도, 남북 접촉, 국민연금 개혁 등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국정 운영에 자신감을 찾은 덕분일 것이다.
청와대가 개헌안 발의를 강행하고 노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추진하려 한 것도 자신감의 발로로 보인다. 그러나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18대 국회에서 개헌안을 처리하겠다며 청와대에 개헌안 발의 유보를 요청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원내대표들의 생각이 개헌을 전제로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18대 국회 논의를 못박은 만큼 개헌의 타당성에 대해 다시 짚어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노 대통령도 여러 차례 설명한 대로 대통령 연임제 개헌은 현행 5년 단임제가 실패한 (혹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제도임을 전제로 한다. 임기 말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 책임정치의 부재, 여소야대의 고착화 등이 주요한 논거다.
그러나 최근 정국은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가 제도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웅변해 준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이 아니라고 역설해 왔다. FTA가 성공적인 비준, 발효단계까지 간다면 역사의 평가를 기다릴 것도 없이 당장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선언해도 문제될 게 없다.
노 대통령이 단임제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FTA를 추진할 수 있었을까. 연임에 신경써야 했다면 지지자들이 극구 반대하는 정책을 소신껏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게 분명하다.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경우 여소야대 역시 문제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증적 증거는 국정운영의 성공과 실패가 단임제가 아닌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당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적 의제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일 때 대통령의 성공 가능성은 커진다. 청와대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노 대통령은 5년 단임제 실패 사례의 예외라고 할까. 노 대통령도 5년 단임제 때문에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할까.
국민연금 개혁 논란은 우리 국정운영 체제의 약점이 다른 데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헌정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무원칙하게 혼용돼 있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국무총리나 장관 등 내각 구성원을 겸직할 수 있는 내각제 요소는 민감한 사안에서 여야의 극단의 대립을 낳는 원인이 된다.
제헌 헌법은 대통령제 주장자와 내각제 주장자의 의견을 무리하게 절충함으로써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9차례 개헌에서 헌법마다 약간씩 다른 점은 있었지만 이런 부자연스러움은 지금까지 계속되는 부분이다. 국무총리가 야당과 국회에서 불필요한 싸움을 벌여 국정을 마비시키고 국가적으로 필요한 정책이 의원직을 가진 주무장관 때문에 당파적 논란에 휩싸이는 현상은 낯설지 않다.
어느 정권이든 의원의 장관직 겸직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야당의 협조를 통한 국정의 원활한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헌법 개정의 필요도 없다. 현행 헌법상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금지 또는 허용 조항이 없는 만큼 순수 대통령제의 정신으로 국정을 운영하면 된다.
최근 외신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2년이나 남겨 놓은 채 실권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조기 레임덕에 빠졌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국민의 관심과 거리가 먼 이라크 전에 매달리면서 국민과의 유대감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도 레임덕에 시달린다면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이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핵심은 역시 제도가 아닌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파이낸셜뉴스 200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