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이-글쓰기의 힘


동문기고 김수이-글쓰기의 힘

작성일 2007-06-05

[문화마당] 글쓰기의 힘

- 김수이 (국문86/ 38회)/ 경희대 교수 -

인터넷은 글쓰기와 글읽기의 공간이다. 인터넷의 장점인 무한대의 정보 공유와 소통, 기록과 재구성은 모두 글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수많은 글을 읽고 쓰는 이들의 이름은 다양한 차원에 걸쳐 있다. 실명, 필명, 가명, 예명, 별명, 익명 등 이름의 모든 유형이 여기 망라되어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난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원하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읽는 인터넷 공간은 지금 이 순간도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중에 있다. 가히 ‘글의 우주의 빅뱅’이라고 부를 만한 규모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정체를 드러내거나 감춘 채 인터넷이라는 글의 우주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은 이제 현대인의 특권이자 삶의 조건이 되었다.

현대문명이 창조한 거대한 글의 우주는 놀랍게도 작은 크기로 도처에 존재한다. 이 우주는 사무실과 안방의 책상 위에 놓여 있고, 달리는 자동차 안에 탑재되기도 한다. 심지어 개인의 주머니 속에도 들어 있다.

컴퓨터를 모체로 하는 인터넷의 경우만은 아니다. 초등학생까지 하나씩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는 개인전용의 글의 우주다. 이 우주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발음을 내며 터진다.“삐릭”,“리리링”,“드드드드”……

이 글의 우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무에서 창조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등장하기 전, 동네의 담벼락과 학교 화장실은 갖가지 낙서로 뒤덮여 있곤 했다. 벽과 천장을 통째로 낙서판으로 내어주며 손님을 끈 술집과 카페, 분식점도 많았다. 학교 교실이나 대학 학회실에 두꺼운 노트 한 권이 비치되어 있는 풍경도 흔했다. 독백과 편지, 농담과 철학적 사변이 가득하던 그 공공의 노트의 제목은 이러했다.‘우리들의 이야기’,‘무제’,‘회색 노트’….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글쓰기 환경의 진화는 문명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현대문명은 글쓰기의 확산과 일상화를 통해 진보하는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첨단 기기가 등장하면 말 한마디와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줄 알았던 예측은 빗나갔다. 사태는 오히려 반대다. 기기와 시스템이 진화할수록 글쓰기는 더 자주,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첨단 정보화 사회의 ‘정보’란 결국 글로 저장되고 유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담벼락과 노트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대를 확장한 모든 사적이며 공적인 글쓰기들은- 때로 모국어를 훼손하고 문법을 파괴하는 문제와는 별도로-그 총량과 에너지 자체로 충분히 경이로운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 글을 쓰며 살았던 적은 없다. 더욱이 그 양은 한계를 모른 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보편화된, 거대하고 강력한 글쓰기의 에너지를 제도권의 글쓰기 교육에 스며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 글쓰기 교육은 중·고등학교의 ‘논술’과 대학의 교양과목인 ‘글쓰기’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의 논술은 입시를 목적으로 틀에 박힌 글쓰기를 권장(?)하는 점에서, 대학의 글쓰기는 그런 논술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에 의해 한 번 듣고 마는 일개 교양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에서(간혹 대학 당국에 의해서조차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간과 분량, 표현과 상상력의 제한이 없는 ‘글의 우주’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된 현실과는 사뭇 동떨어진 상황이다.100분 동안 글자수를 세며 쓰는 논술은 길이만 긴, 변형된 단답형의 시험일 뿐이다.(문제는 또 좀 어려운가!)

3학점 수강으로 ‘완성’되는 글쓰기란 전채요리만 맛보고 끝내는 정식식사와도 같다. 대안으로 통합논술이나 심화 글쓰기 과목이 마련되고 있지만,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과는 아직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현대문명이 글쓰기의 문명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문명의 활기와 에너지가 교육 제도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서울신문 200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