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일본만 모르는 것


동문기고 도정일-일본만 모르는 것

작성일 2007-06-04

[도정일 칼럼] 일본만 모르는 것

- 도정일(영문61/ 13회) /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20세기를 지나면서 ‘문명’이라는 말이 광채를 잃어버리게 된 데는 그럴 만한 두어 가지 큰 사연이 있어서다. 하나는 19세기 유럽 열강들이 ‘문명’과 ‘야만’이라는 2분법의 틀거리를 들고 나와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던 일이다. 문명을 대표하는 유럽 국가들이 미개와 야만의 어둠에 잠긴 나라들을 건져내어 문명세계로 인도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얼마든지 정당하다는 주장을 제국주의적 강점과 침탈의 구실로 삼은 것이다. 이 논리에서 보면 제국주의는 되레 선행과 구원의 실천방식이 된다. 또 하나의 사연은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 대전이 모두 ‘문명의 중심부’임을 자랑했던 바로 그 유럽 대륙에서 일어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반문명적인 살육과 파괴를 기록한 일이다.

-유럽은 ‘문명의 야만’ 반성-

2차 대전 이후의 유럽 지성사는 ‘문명의 수치’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점철되어 있다. 유럽 문명이 야만의 반대명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 야만의 체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세기 유럽인들에게 들이닥친 충격이다. 그들을 부끄럽게 한 것은 ‘문명의 야만’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그 반대의 것이 들어 있다는 통찰을 요약하는 유명한 문학용어가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문명의 야만’도 그런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러나 유럽 문명의 야만성에 대한 반성은 도통한 사람처럼 “그래,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러니 인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럽 문명이 어째서 수치일 수 있었는가에 대한 성찰, 그리고 야만의 재발 가능성은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궁리다.

지금 유럽 국가들과 동아시아의 일본을 갈라놓는 큰 차이의 하나는 이런 성찰, 연구, 궁리의 있고 없음이다. 지난 60년간 유럽 국가들이 알게 모르게 몰두해온 일들 중에는 유럽 문명의 ‘정신적 재건’ 작업이 들어 있다. 전후 유럽의 물질적 복구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망가진 문명의 정신적 토대를 재건하는 일이다. 유럽 문명은 몇 차례 부끄러운 야만의 극장을 연출했지만 그러나 그 잿더미 위에 재생의 새로운 계기들을 만들어 야만의 재발 가능성을 방지하자는 것이 정신적 재건 작업이다. 이런 작업의 필요성을 정치 지도자들에 인식시키고 성찰에 의한 문명의 재생을 교육, 매체, 논저 등의 수단을 통해 배후에서 주도한 것은 유럽 일원의 지식인 사회다. “자기비판과 성찰을 통해 갱생의 힘을 발휘할 줄 아는 것이 다른 문명과 구별되는 유럽 문명의 특징”이라 말했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관찰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유럽 문명의 미래에 대해서는 사실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반성과 성찰에도 불구하고 유럽 문명은 여전히 위선, 당착, 모순의 순간들을 끊임없이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의 증거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권 신장을 ‘문명의 원칙’으로 삼는다는 데 대한 유럽 국가들의 폭넓은 합의는 그런 증거의 하나다. 이를테면,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지금 유럽의 어느 나라, 어느 국민도 ‘강간’을 옹호하거나 “강간은 잘못된 것”라는 데 이견을 달고 나오지 않는다. 이는 유럽 문명이 적어도 그 정도의 인권존중원칙에 ‘합의’할 만큼의 도덕적 수준에는 올라 있는 증거라고 평론가 지젝은 말한다.

-‘위안부 부정’ 문명국 못돼-

미국과 캐나다 의회를 비롯해서 유럽 국가들이 잇달아 일본에 대고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고, 이 사태 앞에서 일본 정부는 상당히 당혹해하는 눈치다. 일본은 유럽 국가들이 왜 그러는지 진짜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 그 진짜 이유는 일본이 ‘문명의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20만 명의 여성들을 강간해놓고 “그건 강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일본은 적어도 상대할 만한 문명국가가 아니라는 것이 유럽적 시각이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라는 후쿠자와 유기치의 100년 전 구호가 아직도 강한 입김을 갖고 있는 나라가 현대 일본이다. 그러나 경제력에 의한 부국강병이나 과거로의 회귀가 문명국가의 반열에 오르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일본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향신문 2007-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