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장성구-방관자’ vs 미꾸라지
‘방관자’ vs 미꾸라지
- 장성구(의학71/ 25회) / 경희대 교수·의학 전문대학원 -
건강과 의학 정보에 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여러 홍보매체에 의학 상식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불합리하고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 내용이 최신 의학 정보인 양 버젓이 자리잡고 있어 걱정되기도 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전문가임을 내세워 국민을 오도하고 현혹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최근 관심은 아마도 맞춤의학이나 유전자 치료 분야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실 유전자 치료법 한 분야만 해도 알고 보면 그 속에 포함된 치료 방법이 아주 다양한데 그 중에 바이스탠더(bystander) 효과라는 것이 있다. 어색할지 모르지만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방관자’ 정도가 될 것 같은데 필자 개인 생각으로는 ‘파급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우리 몸에 어떤 유전자가 고장이 나거나 혹은 기능이 떨어져서 어떤 특정한 질병에 걸린 경우를 생각해보자. 고장난 유전자는 고쳐서, 또 기능이 떨어진 유전자는 새 유전자를 만들어서 세포 속에 넣어주면 그 유전자가 기능을 발휘해 병을 낫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유전자 치료법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 몸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포로 구성돼 있는데 과연 얼마만큼의 세포에 새 유전자를 넣어줘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관건 중 하나다. 그런데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는 적은 수의 세포만 넣어줘도 그 유전자가 생산하는 단백질에 의해 충분한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바이스탠더 효과라고 한다.
암을 치료하는 유전자 항암 치료법에도 이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질병 치료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다행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암세포 입장에서 보면 소수의 미꾸라지 같은 몇몇 세포가 그들 조직을 전부 절단내버리는 격이다. 이렇게 소수는 파급자와 같은 긍정적 역할과 미꾸라지 같은 부정적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소수 의견의 가치성에 관한 말일지도 모른다.
인간 사회에서도 우리는 허다한 미꾸라지와 같은 소수를 많이 봐왔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려놓는다든가 어떤 특정인이 조직의 대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본래 취지를 폄하시키는 일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최근 어떤 정치인의 행보가 세간에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혹은 무엇이 대의인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행동에 집착하는 오늘날 한국 정치인들의 옹졸함과 편협함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가관인 것은 과거 행적을 살펴 볼 때, 이 정치인 행위에 학습 효과를 제공했던 비민주적 인사가 이 정치인의 행보를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추켜세우는 웃지 못할 일이다. 막무가내와 몽니성 소수의 횡포를 보는 것 같고, 우리 사회의 음습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혀를 차게 된다.
개정 사학법을 사학재단에서 극구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법인 이사 중 한 두 명의 이질적 구성원이 있는 게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들이 긍정적 소수의 역할을 하면 얼마든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미꾸라지와 같은 소수가 되면 그 법인은 당장 분규에 빠지고, 그 결과 관선이사 파견과 같은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
[국민일보 2007-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