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이동수-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넘어
[시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넘어
- 이동수 / 경희대 NGO대학원장·정치사상 -
정치사상 최근 시민운동과 관련된 2개의 보도가 흥미를 끈다. 하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의 응답자가 현재의 시민운동을 위기 상황으로 보고 있다는 내용이다. 위기의 원인으로는 46%가 사회의 보수화, 21.4%가 현안에 대한 시민단체의 대응력 부족, 19.8%가 시민들에 대한 영향력 축소를 꼽고 있다. 이는 사회가 ‘보수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진보적’인 시민단체의 활동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그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다른 하나는 주요 시민단체의 새 리더들이 새로운 운동 방향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기사이다. 그들은 단체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대중과 좀 더 소통하고,’ ‘시민들과 공감대를 넓히며,’ ‘시민단체가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변화를 주장한다.
이런 방향 전환은 적절해 보인다. 그동안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란 말도 있었듯이 시민의 생각이나 생활과 동떨어진 시민운동은 아무리 정당한 가치와 목적을 내세우더라도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시민사회의 덕목은 시민들 간의 소통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에 협력과 화합의 기운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 흔히 사회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라는 세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시민사회가 오늘날 대두된 것은 더욱 격렬해진 사회적 갈등과 투쟁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기대 때문이다.
국가는 그 기능상 법, 제도, 공권력을 사용하여 사회적 갈등을 강제적으로 조정하는 기구이다. 따라서 국가는 갈등 억제에 주력할 뿐 갈등 해소와는 거리가 멀다. 또 국가의 강화는 민주주의 이상 중 한 축인 자유를 억압한다. 한편 시장은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이해관계의 충돌을 효율성에 따라 자발적으로 조정하는 기제이다. 따라서 시장은 충돌과 투쟁을 자유로운 경쟁으로 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때 시장의 확산은 부의 증가를 가져오지만 민주주의 이상의 또 다른 한 축인 평등을 침해한다.
따라서 갈등을 해소하고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는 시민사회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시민사회란 ‘시민성(civility)’을 지닌 사회를 일컫는다. 이는 구성원들이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타인과 함께 살고 있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한다. 서구 민주주의 발전은 이런 시민사회의 발달과 궤를 같이 했다.
그동안 우리 시민운동은 민주화의 완성을 위해 국가의 억압과 시장의 불평등에 대한 반대 투쟁에 집중해 왔다. 이 반대 투쟁은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대 투쟁 또한 권력화되었다. 이제 국가와 시장은 시민단체의 눈치를 볼 정도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원래 역할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반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과 협력의 공간을 창출하는 데 있다. 이럴 때에만 사회적 갈등 해소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은 시민들 자체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이것이 지역운동이나 풀뿌리 시민운동이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에게 시민운동은 있지만 아직 시민사회가 제대로 확립된 것은 아니며, 시민운동이 정치 투쟁이나 경제 투쟁을 넘어설 때에만 시민사회 공간은 형성된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려의 마음이 생긴다. 시민 자체에 관심을 두고 시민과 소통하고자 한다면 시민운동의 위기가 사회의 ‘보수성’ 때문이라고 전제해서는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민과의 소통은 이념과 권력을 탈피하는 시민단체의 자기 반성과 변신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조선일보 2007-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