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결국엔 정치권력을 꿰찬 ‘죽림칠현’


동문기고 백승종-결국엔 정치권력을 꿰찬 ‘죽림칠현’

작성일 2007-05-30
[이 한권의 책] 결국엔 정치권력을 꿰찬 ‘죽림칠현’
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짜오지엔민 지음

- 백승종 / 경희대 겸임교수 -

근대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은 죽림칠현에 관해 색다른 주장을 폈다. 그들은 중국 고대의 정치 현실에 맞서 싸웠다고 했다. 보통은 어지러운 시속을 등진 채 고담준론을 편 선비들을 죽림칠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와 딴판이다. 이 책의 저자 짜오지엔민(상하이대 교수)은 죽림칠현의 정치적인 면모를 루쉰보다도 강조한다.
따지고 보면, 죽림칠현은 “빼어난 속물들”이란다. 세상이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지만, 해석이 이렇게 달라질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중국 고대의 위(魏)·진(晉) 시대는 정치적으로 혼란했다. 그때 일곱 선비가 낙향해 거문고를 퉁기고 술 마시며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을 외며 청담(淸談)을 나눴다. 완적(阮籍)·혜강( 康)·산도(山濤)·상수(向秀)·유령(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이 주인공이었다. 그들 일곱 명의 행동거지에는 기괴한 구석이 있었다.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중국 고전에 그들에 관한 단편적인 이야기가 상당수 눈에 띈다. 후세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죽림칠현의 행적에 대해 평했다. 대개는 선비가 난세를 헤쳐갈 길을 제시했다는 것이었다.

조선에서의 평가도 그러했다. 특히 조선 광해군 때, 실의한 사대부들은 죽림칠현의 고사를 인용하며 부러워했다. 자의든 타의든 벼슬길에서 멀어진 선비들은 시골에 숨어 취향이 맞는 이들과 계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조선 선비들은 대숲에 앉아 세상을 비웃은 셈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칠광(七狂)” 또는 “칠현(七賢)”이라 불렀다. 조선 팔도에서도 죽림칠현의 인기는 대단했던 것이다.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자 현대 중국의 역사가들은 죽림칠현의 개인주의적 성향이라든가,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죽림칠현이 유교에 바탕을 둔 일체의 형식과 정치담론을 비판했다든가, 유교사회를 지배한 권력자들의 위선을 폭로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이것도 좀 지나친 과장 같다. 하지만 천년도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고담준론의 대가 또는 청담파로만 알려진 죽림칠현이 현실 비판론자로 재해석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분명 새로운 일이었다.‘세설신어’ 구석구석에 남은 기록이 죽림칠현 연구의 바탕이다.

그래도 막상 그들의 모습과 행적을 자세히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적어도 짜오지엔민 교수가 이 책을 쓰기까지는 그랬다. 저자는 사방에 흩어진 구슬을 모아 비단실로 꿰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업적이다.

이 책에는 죽림칠현에 관한 모든 것이 도마 위에 오른다. 성역은 없다. 저자는 우여곡절 끝에 그들이 한데 모였다 다시 헤어진 사정이며, 권력과 타협해 벼슬길로 되돌아간 일, 또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다가 죽음을 당한 경위를 상세히 밝힌다. 만약 일곱명 가운데 청담파가 있었다면 두명 정도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혜강과 술독에 빠져 평생을 허우적거린 유령이다. 나머지 다섯사람은 보통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역시 세상은 언제나 속물들의 차지인가. 역자 곽복선(중국 칭다오 무역관장)은 힘주어 말한다.“죽림칠현은 중국적 삶의 원형이다. 현대 중국인에 관해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 보라!”

나는 그의 말을 받아 이렇게 말하고 싶다.‘죽림칠현’은 현대 한국인의 자화상도 된다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한편의 흥미로운 역사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울신문 2007-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