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왜 하필 이명박인가


동문기고 이택광-왜 하필 이명박인가

작성일 2007-10-22

[시론] 왜 하필 이명박인가
 
- 이택광 / 경희대교수·영문학 -
 
올 대선정국은 별반 할 말이 없는 상황 같다. 한나라당은 분열하지 않았고,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범여권의 흥행전략도 지지부진이다. 여전히 ‘한방’이 판세를 뒤집어줄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지만,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일이다. 이러 저러한 예측이 들어맞지 않는 상황은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경제비전을 간과한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이와 반비례해서 떨어져야 할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오히려 동반 상승했다. 이걸 두고 한 여론조사 기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이명박 후보 지지 문제가 별개이고, 남북정상회담보다 대선이 더 긴급하고 가까운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데이터 해석은 자유다. 이걸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다른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문화적 관점은 지금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시각이다. 과연 2007년 한국의 대중은 무엇을 욕망하고 있을까. 문화적 관점에서 이 질문에 대답한다면, 지금 대중이 요구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니고, 바로 ‘2002년 어게인’이다. 2002년은 한국사회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해다.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이 일어났고,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또 다른 ‘기적’이 벌어졌다. 물론 특정인들에게는 이게 재난이거나 악몽이었겠지만, 어쨌든 불가능한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걸 모두 ‘경험’했다.

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2002년 이후 한국사회는 ‘정치’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2002년 대선까지도 일정한 역할을 했던 ‘원로 정치인’이 2007년 대선 판도에서는 존재감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도 별 효력이 없다. 이건 이제 정치가 조직이라기보다 ‘바람’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른바 ‘참여’의 경험을 가져본 대중은 ‘기적의 바람’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소위 386정치인들에게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민주화 운동의 승리였겠지만, 대중에게 참여정부의 출현은 ‘새로운’ 경제적 비전을 의미했다. 황우석의 줄기세포와 한류는 이런 비전에 대한 응답처럼 보이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문제는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정치적인 것’으로 잘못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런 판단착오는 한국적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즐거움’을 얻던 대중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후보를 향한 고공 지지율은 이런 참여정부에 대한 대중의 항의이자,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어주지 못한 걸 보상받고자 하는 요구의 표현이다.

-‘기업사회’는 경영인을 원한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겉으로는 ‘안티 노무현’이지만, 실제로는 ‘노무현 어게인’이다. 자연인 ‘노무현’이 아니라, 그것으로 상징되었던 2002년의 ‘느낌’을 다시 살려내고 싶은 것이다.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면서 열망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이명박 후보에게서 재연할 수 있기를 유권자들은 바라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과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동반상승한 건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 후보에게 바라는 것이 ‘노무현 어게인’이니, 노무현 바람을 흉내내기에 급급한 범여권의 전략이 먹혀들 리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와 별개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왜 하필 이명박인가. 그 이유는 이명박 후보가 최고경영자(CEO)로 성공한 경영인의 표상이고, 지금 참여정부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췄다고 유권자들이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사회’는 정치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뿌리 깊은 한국사회의 무정부주의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경향신문 2007-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