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윤성이-국민경선 이대로는 안된다
[열린세상] 국민경선 이대로는 안된다
- 윤성이 /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파행과 혼란을 거듭하던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박스떼기’와 ‘명의도용’을 거쳐 경찰 압수수색에 이르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내일 후보경선이 마감되면 그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범여권의 또 다른 축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도 동원·금권선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후보사퇴의 파행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한 달여 전에 끝난 한나라당 후보경선에서도 후보검증을 앞세워 온갖 추태를 다 보여 주었다.
신문기사를 보면 자유당 시절의 선거인지 민주화 20주년을 맞는 오늘의 모습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들 중 누군가에게 다음 5년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 신세가 참으로 암담하다.
당내 규칙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 대선후보 경선을 시작하였으니 사실 파행과 혼란은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었다. 경선규칙도 합의하지 않고 그저 다 잘될 것이라는 요행만 믿고 후보선출을 덜렁 시작한 정당들의 인식이 한심할 뿐이다. 거대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동네 애들 축구판만도 못하다는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대선후보 경선에 관한 제도와 절차를 미리 정비하여야 한다. 먼저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경선에 계속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 반영비율과 방식을 둘러싸고 모든 정당이 파행을 겪었다. 당내 지지도와 일반 국민의 선호도가 다른 까닭에 여론조사 반영비율에 따라 유불리가 갈라지니 각 후보들은 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명박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박근혜후보에게 뒤졌으나 여론조사에 앞서 승리하였다. 여론조사는 오차범위가 있기 마련이고 설문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투표방법의 하나로 대체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는 여론조사를 굳이 계속 사용할 것이면, 각 정당들은 그 절차와 방법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일찌감치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경선 도중에 규칙을 바꾸는 혼란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실시하는 모바일투표 역시 많은 문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개인적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없고 매표의 가능성도 있다. 옆 사람이 투표하는 내용을 지켜볼 수도 있을뿐더러 돈을 주면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강요하고 감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모바일투표를 수차례 실시한 영국도 한동안 중단하였다.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서 조직·동원 선거 논란이 그치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대선 몇 달 후 있을 국회의원 선거 공천과 무관하지 않다. 거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대선 후보캠프에 줄서기를 하는 것은 다음 총선에서 공천권을 보장받겠다는 계산에서이다. 실제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양 캠프간의 갈등이 도를 넘으면서 공천살생부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고, 대통합민주신당 역시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고자 하는 인사들이 캠프에 들어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불법·탈법 운동을 저질렀다. 결국 공정하고 투명한 국회의원 공천이 보장되어야만 대선후보 경선도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다. 똑같은 국민경선을 하면서도 미국과 비교하여 우리의 대선 후보경선이 더욱 혼탁한 것은 소수 실력자들이 국회의원 공천권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 총선에서는 지금 국회의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방의회 출마자들이 각 후보 캠프에서 조직·동원선거에 앞장설 것이다.
5년 후에는 ‘국민경선’이 뜻하는 대로 국민의 손으로 후보를 결정하기 위해서 경선제도와 절차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공천방식을 고치고 다듬는 작업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서울신문 200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