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동문기고 노동일-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작성일 2007-07-02

[fn시론]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 노동일 (법학77/ 29회) / 경희대 법대 교수 -
 
6·10 항쟁 20주년을 맞아 그 의미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활발하다. 이맘 때면 당시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느꼈던 벅찬 감격이 되살아나는 사람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거리 시위대의 일원으로 참여한 모든 ‘넥타이 부대’의 공통적인 현상이리라.

1987년 이후 사회 모든 부문에서의 민주화는 괄목할 만한 진전이 있었다. 어지간히 식상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건만 여전히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주요 논제 중 하나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민주 대 독재, 개혁 대 수구, 평화 대 냉전 등 이분법적 편가르기가 그치지 않고 있다. 진정한 민주사회의 건강한 논쟁과는 거리가 먼, 극단적 투쟁과 저항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총론적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며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적으로 간주해야 할까. 북한에 대한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는 분단 상황이 종료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도 민주주의의 성년기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는 논쟁의 관심이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민주화의 각론에 모여야 한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반독재 민주화투쟁 시대가 끝난 마당에 새삼 수구세력의 정통성을 문제삼을 순 없다고 밝힌 것은 그런 관점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언급이다.

노 대통령은 또 정정당당한 경쟁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한나라당을 민주적 경쟁 상대로 인정했다. 한나라당은 분명 비판받아야 할 수구세력이지만 과거 군사독재 정권처럼 타도 대상은 아니며 결국 대화와 타협, 승복의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마도 민주화를 완성하려면 이번 대선에서 수구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노 대통령의 언급에서 여전히 수구세력 혹은 개혁세력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관점은 잠시 논외로 하자. 중요한 사실은 정치에서도 정권의 능력이나 실적을 떠나 정통성만이 문제되었던 과거와는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세력의 재집권이 필요한지 아니면 보수세력의 정권 탈환이 필요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 집권하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자체가 후퇴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일찍부터 민주주의 세례를 받은 고학력 중산층이 이미 폭넓게 형성된 마당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어느 쪽이 더 필요한지는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민주세력 무능론, 혹은 독재세력의 후예론이라는 단순한 접근법으로 상대 당을 타도 대상으로 설정하는 데 여념이 없다. 상대 당뿐만이 아니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살기 어렵다는 식의 깎아 내리기 공방은 같은 당 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국민은 ‘무능한 민주세력’ ‘실패한 개혁세력 혹은 ‘부패한 수구세력’ ‘독재세력의 후신’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민주냐 독재냐는 이미 낡은 시기의 관점이다. 투쟁과 저항으로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국민을 오도하는 선동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정치인들에게 국민이 물어야 할 것은 심각한 사회 문제인 계층간 양극화 현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과거와는 패러다임이 달라진 한·미관계, 남북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묻자.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교육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일본과 중국 등 동북아 외교를 풀어낼 비전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부동산 문제를 포함, 심각해지는 경제문제를 해결해낼 비전과 역량이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다수의 전문가는 법치주의나 절차적 민주주의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실패가 국민의 잘못이 아닌 정치인들의 잘못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국민 역시 궁극적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개인도 20년이면 성숙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성년 대접을 받는다. 정치인들의 발언이 어떻든 그에 휘둘리지 않고 현명한 물음을 묻는 것 역시 민주화의 성인이 된 우리 국민의 몫일 것이다. 

[[파이넨셜뉴스 200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