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정진영-北이 칼자루 쥔 남북관계
[시론]北이 칼자루 쥔 남북관계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 관계학 -
서해상의 군사적 충돌 방지를 논의하려는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7일에 북한은 서해상으로 미사일 2기를 발사했다. 대북 쌀지원이 핵심 이슈였던 남북 장관급 회담이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열리기 나흘 전에는 동해상으로 미사일 1기를 발사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행동이 연례적인 군사훈련으로 보인다며 문제 삼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북한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사일 발사를 전후해 개최된 남북한 간의 두 회담에서 나타난 양측의 태도도 남북관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 대표는 쌀지원 약속을 지키라고 강력히 요구했고, 이에 대해 남측 대표인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2·13 합의 이행이 안 된 상태에서 쌀지원은 곤란하다면서 못내 미안하고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요구를 당당히 주장하는 북한과 이를 들어주지 못해 어찌할 줄 모르는 정부의 태도가 대비되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왜 이러한 상태에 도달했는가. 많은 이유가 거론될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역시 우리 정부가 자초했다고 보아야 한다.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에 그렇게 행동하도록 메시지를 전달했고 북한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지원이 북한의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햇볕정책의 논리는 북한이 두 가지를 매우 합리적으로 기대하게 하였다. 우선 자신이 바뀌지 않더라도 남측이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자신의 불변은 남측의 지원부족 탓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구를 증대시키면 남측의 지원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이다. 요구가 클수록 북한에 중요한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원규모도 커야 할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 쿠웨이트 방문 때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를 만찬장에서 만나 참여정부 대북정책의 진정성을 북한 지도부에 전달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이것이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남측에 보다 협력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한 말이었다면 최소한 헛수고를 했다. 나라의 생존과 운명을 걸고 각축전을 벌이는 상대방의 수장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안달한 셈이기 때문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북한당국은 우리 정부의 의도와 전략을 꿰뚫어보고 있다. 이미 다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관계의 개선을 한국의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한 남북관계의 칼자루는 북한이 쥐게 되고, 북한은 이를 이용해 영향력을 극대화하려고 할 것이 당연하다. 물론 한국의 친북세력을 정치적으로 돕기 위해 북한 당국이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자선을 베풀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그렇게 자비롭지 못하거나 친북세력도 자신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돼야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친북과 남북관계 개선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 북한의 선의와 자비에 의존하는 친북세력은 오히려 북한 당국의 요구와 콧대만 높여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남북한이 평화와 협력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국가안보를 확고히 하는 바탕 위에서 전략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당국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합리적인 행위자라고 인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도 북한의 반발을 두려워해 아무 말도 못하고 지원요구를 들어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태도로는 한국의 안보도 한반도의 평화도 보장할 수 없다.
[[세계일보 200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