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도정일-쫓겨난 한국 유학생들
[도정일 칼럼] 쫓겨난 한국 유학생들
- 도정일 (영문61/ 13회) / 문학평론가 -
미국 듀크대학 경영대학원에 유학 중이던 한국 학생 몇 명이 기말 페이퍼를 베껴 내었다가 징계를 받고 퇴학당했다 한다. “당신은 공부할 자격이 없으니 나가라”는 것이 퇴학조치다. ‘공부할 자격’이란 이 경우 지능지수도 아니고 수학능력도 아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하고 연구 능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베껴서 내면 안 된다”는 연구자의 기본 윤리를 지킬 줄 모르면 그게 바로 ‘공부할 자격 없음’에 해당한다. 표절이건 복제이건 무단 차용이건 간에 베껴내기는 학문 세계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지적 도둑질이고 속임수다.
-기말 페이퍼 베껴 내 퇴학-
고등교육의 최고 단계인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들이 그 기본 금기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나중 대학에 와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될 때, 페이퍼를 베껴내는 학생들이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괜찮아, 괜찮아”라며 어깨를 두드려준 다음 “옛날에 나도 그랬어”라고 말할 것인가?
퇴학 당한 유학생들이 정말 뭘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인지 알고도 그랬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건 문제가 위중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르고 그랬다면 그들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래선 안 된다”를 배운 적이 없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 교육은 교육이랄 것도 없는 교육, 그야말로 똥통 교육으로 전락한다. 이 경우 문제의 유학생들만 퇴학감이 아니라 한국 교육 전체가 퇴출감이다. 알고도 그랬다면 문제의 위기국면은 두 차원으로 분리된다.
하나는 그 도덕적 해이가 그들 몇몇 유학생들의 개인적인 위기로 좁혀지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베껴내기가 한국 교육에서는 흔히 있는 일, 누구나 하는 짓, 누구나 하니까 특별히 문제될 것 없고 그래서 뻔히 알면서도 암암리에 허용되고 통용되는 ‘다반사’라는 쪽으로 위기국면이 확대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베껴내기는 한국의 ‘문화’ 같은 것이 된다.
우리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은 유학생 퇴출 사건이 몇몇 사람의 개인적인 도덕적 해이로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라 한국 교육의 위기이자 문화의 위기라는 숨길 수 없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그 유학생들이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알면서도 그랬을 것이고 알면서도 그렇게 한 데는 “그래도 된다”는 내적 자기 허용이 그들에게 습관으로, 문화로, 판단으로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경험적 판단의 내용도 우리가 알만하다. 1) 한국에서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 별 관계가 없다, 2) 한국에서 법대로 하다가는 자기만 손해 본다, 3) 한국에서는 속임수도 경쟁력이다, 4) 성공하는 데 필요하다면 무슨 수를 쓰건 한국에서는 문제 되지 않는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도록 가르치고 그 분별을 실천으로 옮길 줄 알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한국 교육은 지금 이 부분에서 큰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교육·문화의 위기 점검을-
문제의 유학생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문화의 차이’ 때문일지 모른다는 동정론 비슷한 얘기도 듀크대학 안에서 나돌았다고 한다. 이건 동정도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베껴냈다가 추방 당한 9명의 학생들이 한국, 중국, 대만 출신의 유학생들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보면, 그 ‘문화적 차이’론에도 별개의 진실이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그 진실은 한국, 중국, 대만의 동아시아 3국이 지금 서로 비슷한 교육의 위기, 비슷한 문화의 위기를 겪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경제적 성공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동아시아권 나라들이 정신과 윤리의 타락을 겪고 있다면 동아시아 문명이 ‘시장가치’를 넘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더 소중한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가? 미래 세계를 위한 동아시아적 비전은? “그런 건 없다”고 말했다가는 자존심이 입을 상처가 너무 크다.
[경향신문 2007-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