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국-잊지 말자, 한잔 뒤 이 닦기


동문기고 박영국-잊지 말자, 한잔 뒤 이 닦기

작성일 2008-01-02

[박영국교수의LOVETOOTH] 잊지 말자, 한잔 뒤 이 닦기

- 박영국 (치의72/ 28회) / 경희대치대병원 교수·교정과 -
 
‘원샷!’

 술자리의 구호처럼 된 이 말을 연말이 되면 더욱 자주 듣게 된다. 술잔이 거듭되면서 취기가 달아오르고, 감정의 봇물이 술자리에 넘쳐 흐른다. 이때 우리의 구강 내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치아 사이의 플라크에 살고 있는 세균은 염증성 물질을 마구 쏟아낸다. 여기에 담배까지 피워대면 니코틴과 타르 등 수십 종의 화학물질이 입 안 구석구석에 침투돼 염증을 더욱 악화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염증물질이 입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술을 마시면 입 안의 혈관이 확장된다. 그리고 확장된 혈관 틈새로 염증성 활성물질(사이토카인)이 침투한다. 이 염증성 물질은 전국 도로망인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돌아다니며 질병을 일으킨다. 심장에 붙으면 심내막염을, 콩팥에 기생하면 신장병을, 관절에 침투하면 관절염을 유발한다.

 또 술은 치아를 들뜨게 한다. 술을 마시면 치아와 잇몸을 연결하는 치근막 인대가 두터워지면서 치아가 위로 솟는다. 평소 잇몸이 좋지 않은 사람이 술을 마신 뒤 이가 들뜬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다.

 술은 입 안을 건조하게 해 구강 내 환경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 소변으로 수분이 대량으로 빠져나간다. 그 결과, 입과 혀·기도 점막에선 탈수 현상이 나타난다. 술을 먹은 다음날 목이 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 혀와 잇몸의 수분 부족은 곧바로 면역세포의 활동을 억제해 질병에 대한 저항 능력을 떨어뜨린다.

 침에 의한 자정기능도 급격히 저하된다. 세균이 활발하게 번식하면서 알코올성 치은염이나 감기와 같은 감염성 질환에 쉽게 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술 먹은 다음날 혀 위에 하얗게 덮이는 두꺼운 설태, 그리고 심한 구취는 이러한 입 안의 세균 활동 때문에 생긴다.

 실제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의 치아를 한번 들여다보라. 전신 건강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치아를 잃게 되는 빈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높다.

 술로 인한 잇몸 손상과 전신 건강을 보전하는 묘책은 하나밖에 없다. 술에 취하면 스스로 행동 조절이 어려워져 이를 닦지 않고 자는 경우가 많다. 귀찮다고 구강 양치액을 사용하면 술로 인한 탈수로 염증이 악화된 잇몸과 혀에 자극을 줘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다. 따라서 술을 먹은 날은 반드시 취침 전 이를 꼼꼼히 닦아야 한다. 이를 닦으면 훨씬 숙취가 덜해지는 부수적인 이익도 얻는다.

 몸을 가누기 힘들어 이를 닦지 못했다면 다음날 눈이 떠짐과 동시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치아 구석구석과 혀를 알뜰히 닦아야 한다. 특히 혀의 설태는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칫솔과 흐르는 물로 닦는다. 혈행이 좋아져 한결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술로 인한 폐해를 막는 길은 이를 잘 닦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겨울철 두꺼운 외투 안주머니에 담배 대신 작은 칫솔과 치약을 가지고 다니자. 2차를 가는 잠깐 사이라도 이를 닦는 노력이 건강한 몸과 치아를 보장해준다.

[[중앙일보 2007-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