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붉은 별’이 빛나는 밤에…


동문기고 김상준-‘붉은 별’이 빛나는 밤에…

작성일 2007-12-28
[과학칼럼]‘붉은 별’이 빛나는 밤에…
 
- 김상준 / 경희대교수·우주과학 - 
 
한해가 저물어 가는 요즘 평소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동창들의 얼굴을 보고 한잔 걸치고 겨울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동쪽하늘에 아주 밝고 붉은 별을 볼 수 있다. 비행기도 많이 다니는 하늘이다 보니 혹시 비행기일까 생각하고 서서 기다려 보면 움직이지 않고 붉은 빛을 내뿜기만 한다. 이 별은 요즘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화성이다. 화성은 지구 바로 바깥을 도는 행성으로 지구와 함께 태양을 돌다가 근래에 지구에 가장 근접하게 되어 밝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밝기는 도시의 밝은 밤하늘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으리 만큼 밝아졌다.

한편 화성에 손을 뻗쳐 남쪽 하늘로 (오른쪽으로) 한 뼘쯤 되는 곳을 보면 직사각형 모양의 오리온 별자리가 떠오르고 직사각형 가운데는 3개의 별이 나란히 늘어선 삼태성이 보인다. 모두 어느 정도 밝은 별들이라 서울에서도 잘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밤이 깊어가고 자정에 가까우면 화성은 머리 위로 떠오르고, 초저녁에 비스듬히 있던 직사각형 모양의 오리온 별자리는 남쪽하늘에 올라 이젠 직사각형을 세워놓은 모양이 된다.

-인류의 끝없는 관심대상 ‘화성’-

이때 오리온 별자리 좌하 방향으로 파랗게 빛나는 시리우스를 지평선 위로 볼 수 있다. 시리우스는 하늘에서 가장 밝은 항성으로 밝은 행성인 금성, 화성, 목성을 제외하곤 제일 밝은 별이다. 항성은 태양과 같이 핵융합 원리로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말하고, 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 주위를 돌며 태양빛을 반사하여 빛을 발하는 지구와 같은 천체이다. 시리우스의 밝기는 지금의 화성만큼 밝으므로 아파트 등 높은 건물이 없는 곳에서는 붉은 화성과 파란 시리우스가 빛나는 겨울 밤하늘의 정경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겨울은 강수량이 적고 날이 맑아 밤하늘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많다. 또한 시리우스를 포함하여 마차부자리 카펠라, 그리고 보석들을 박아놓은 듯 빛나는 플레이아데스 성단 등 밝은 별로 가득 차 있다. 붉은 행성 화성이 떠오르는 연말의 겨울 밤하늘은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 ‘Starry Night’와 비슷하게 될 것 같다. 아마도 그 옛날 고흐도 화성과 같은 밝은 행성과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고 영감을 얻어 불후의 명작을 남겼을 것이다.

화성은 고대로부터 인류의 관심 대상이었다. 로마 신화에서는 화성의 붉은 빛이 핏빛으로 물든 전쟁터를 연상시킨다 하여 전쟁의 신으로 불렸다. 19세기에 망원경으로 화성을 자세히 관측한 일부 천문학자들은 화성 표면에 보이는 줄무늬를 화성인이 만든 운하라고 주장하였다. 19세기 말 미국의 소설가 웰스는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공상과학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라디오 드라마가 방송되었을 때 사람들은 실제 화성인이 공격하는 것으로 믿고 대혼란에 빠진 적도 있었다. 1965년 화성 탐사선 마리너 4호가 근접사진 촬영을 하고 76년 바이킹 1호가 화성 표면에 최초로 착륙하여 표면에는 아무도 없고, 물도 흐르지 않는 황량한 곳이라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화성인의 운하는 전설로 남아 있었다.

바이킹 1호 이후 여러 탐사선들이 화성을 방문하여 고대 신화에서부터 19세기 화성인이 만든 운하까지 우리에게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해준 화성의 신비를 벗겨내고 있다. 그럼에도 화성은 외계생명체 존재 가능성이란 신비를 아직까지 감추고 있다. 화성 표면에 물이 흐른 흔적이 보이므로 지하에 물이나 얼음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고, 과거에 지금보다 따듯했던 시절 화성 표면에 호수나 강도 있었을 것이다. 이때 자연스럽게 생명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2000년 초 미국은 여러 개의 무인 화성 탐사선을 보내 화석화되어 있는 과거의 생명체 흔적이나 현재에도 있을 수 있는 생명체를 탐사하기로 하였다.

-오염된 지구의 신대륙 될 수도-

또한 2020년대에는 유인 우주선을 보낼 계획도 있다. 물론 막대한 예산 집행과 장시간에 걸친 노력의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양계 행성들 중 그래도 지구 온도와 비슷한 행성인 화성을 탐사하는 것은 아마도 15세기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인류에게 하나밖에 없는 지구가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먼훗날 우리 자손들에게 화성은 신대륙과 같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2007-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