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기업의 대학교육 평가 긍정적이다


동문기고 안재욱-기업의 대학교육 평가 긍정적이다

작성일 2007-12-21

<포럼> 기업의 대학교육 평가 긍정적이다
 
- 안재욱 (경제75/ 28회) / 경희대 교수·경제학, 美 오하이오주립대 방문교수 -

내년부터 기업이 주도하는 대학 학과평가가 실시된다고 한다. 2008년에 1차로 금융·건설·자동차·조선 4개 분야를 평가한다. 이러한 기업의 대학 교육 평가는 우리 대학 교육 수준이 기업 요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532개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년제 대학 인문사회계열 졸업 신규 인력에 대해 기업 인사 담당자 70.3%가, 4년제 대학 이공계열에 대해서는 57.9%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답했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등학교 졸업생 중 82.1%가 대학에 간다. 그에 비해 대학 교육의 경쟁력은 매우 낮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평가에서 한국의 대학 경쟁력은 55개국 중 40위다. 기업의 요구에 부합하는 경제 교육과 언어 교육이 각각 28위와 44위로 역시 하위권이다.

영어를 10년 이상씩 배우고도 외국인을 만나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통해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고 고용을 창출하는 조직인데도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실례들은 대학 교육 내용이 얼마나 기업과 사회의 요구와 괴리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식은 사회의 요구에 부합할 때 살아나게 된다. 그렇지 않은 지식은 지식을 위한 지식이 되고 죽은 지식이 된다. 사회의 요구에 부합되는 지식이 많이 생산될 때 그 사회는 발전한다. 로마가 번영하고 인류 문명사에 위대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그리스의 사상과 과학을 바탕으로 실생활에 필요한 제도와 법, 기구와 시설을 만들어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고 편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지식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사회의 요구와 거리가 먼, 지식만을 위한 지식을 생산하거나 가르친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변해야 한다.

기업의 대학 교육 평가는 대학 교육의 내용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기업의 수요가 민감하게 반영될 것이고 실용적인 교육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될 것이다. 그래서 기업의 대학 교육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물론 일부에서 반대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인 기업이 고상한 학문을 하는 대학을 평가하는가라고 반발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기업이 사회 발전의 근본이다. 기업이 잘돼야 사회가 발전하고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대학이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학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학술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500대 세계 대학 학계순위와 같이 학술적인 것도 있지만, 영국의 ‘더 타임스’가 발표하는 세계 대학 평가에는 국제기업이 평가하는 항목이 들어 있다. 일본 역시 30대 기업이 참여하는 평가기구를 만들어 학과별 등급을 발표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이 대학을 평가한다는 사실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기업의 대학 평가를 통해 대학의 질적인 변화를 꾀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없애는 일이다. 사실 우리 대학이 낙후되고 경쟁력이 낮은 근본적인 이유는 대학 교육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있다. 정부의 간섭에 의해 일률적인 방식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과정을 규제하는 상황에서 대학들이 서로 경쟁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대학 교육 평가는 일종의 시장 압력이다. 시장의 압력에 의해 경쟁 유발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은 대학이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때다.

[[문화일보 2007-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