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이상한 대선


동문기고 이택광-이상한 대선

작성일 2007-12-14
[시론]이상한 대선
 
-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학부 - 
 
이번 대선 판도는 과연 완전한 보수의 승리인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이들이 많을 듯하다.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정당에서 후보가 두 명이나 나왔고, 여론조사에서 이들이 얻고 있는 지지표가 반수를 넘고 있으니 이렇게 대답하는 게 크게 틀린 건 아닐 테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다소 막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보이는 구도가 감추고 있는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정치’ 자체를 안보려는 유권자-

확실히 올해 대선은 뭔가 이상하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온갖 파란에도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이 해괴한 상황을 해명해줄 실마리가 바로 이회창 후보의 출마라고 한다면 좀 생뚱맞을까? 그러나 이회창 후보의 등장과 그에 대한 지지야말로 이 이상한 대선 판도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을 열어준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를 대통령직에 눈이 먼 ‘노욕’의 산물로 보는 건 너무 안이한 태도다. 욕심만 낸다고 정치판에서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는 치밀한 정치공학의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 정치공학이 말하는 현실, 여기에 우리가 알고 싶은 비밀이 숨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회창 후보는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라는 새로운 국면을 드러내는 증상이다. 왜 위기인가? 이번 대선에서 진보 대 보수라는 진영론에 입각한 대립구도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 대 보수는커녕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정치’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진보든 보수든 정치는 신물난 무엇일 뿐이다.

정치가 신뢰를 잃고 이념마저 실종된 시대, 그래서 유권자들은 ‘정치인’처럼 보이지 않는 특정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려고 하는 게 지금 대선 판도다. 강준만 교수는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참여정부라고 지적했는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참여정부는 보수주의와 대결하기 위해 진보의 언어를 즐겨 사용했지만, 실제로 행한 일들은 많이 달랐다. 이게 결정적으로 참여정부에 대한 신뢰를 접도록 만들었다는 게 강준만 교수의 요지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불찰은 진보진영에 대한 신뢰 상실에만 그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와 정치인 전반에 대한 신뢰 상실이 이번 대선 판도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믿지 않는 유권자들이 지금 매달려 있는 마지막 동아줄이 경제다. 이런 상황은 보수진영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명박 후보가 보수주의를 대표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게 아니라 가장 친경제적 인물처럼 보이기 때문에 지지할 뿐이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는 이런 경제주의의 ‘무개념’을 껄끄럽게 여긴 일부 보수 세력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에 함몰돼 이념마저 실종-

보수주의도 하나의 정치 이념이다. 경제는 진보든 보수든 모든 정치 이념과 적대적이다. 참여정부가 진보를 표방하면서 시장주의적 개혁개방에 열을 올린 건 이런 경제의 탈정치성이 보수주의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 참여정부의 논리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없애버린 것.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이회창 후보의 출마는 이 차이를 다시 복원하기 위한 보수 세력의 시도인 셈이다.

그러나 이미 진보라는 한쪽 날개가 무력해져버린 상황에서 이회창식 보수주의의 차별화가 가능할지는 모를 일이다. 정치 대 경제, 이것이 이번 대선을 보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아닐지.

[[경향신문 2007-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