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록-남북경협, 차기정부에 짐되고 있다


동문기고 송병록-남북경협, 차기정부에 짐되고 있다

작성일 2007-12-10

<포럼> 남북경협, 차기정부에 짐되고 있다
 
- 송병록 (정외76/ 31회) / 경희대 행정대학원 교수·정치학 -
 
김경준씨와 이명박 후보 간의 BBK 이면계약서를 둘러싼 진위 공방과 삼성비자금 특검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의 공방 때문에 지난주 언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었지만, 22일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제1차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계획안 역시 그동안 노무현 정부의 많은 정책들처럼 방향은 옳으나 방법이 틀려 국민적 지지를 얻기가 어려울 것 같다. 노 정부는 출범 초기 ‘참여정부’라며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구호를 내세웠지만, 정책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독선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국민이 반(反)참여, 비(非)참여의 자세를 갖게 만들었다.

민주주의란 원래 합의를 도출하기까지 많은 노력과 인내와 설득이 필요한 정치체제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기는 하지만, 일단 합의를 이루고 난 뒤에는 강력하고 신속한 정책 추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노 정부는 합의 도출 과정을 생략한 채 국민에게 정부의 정책을 믿고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었다. 이번 계획안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남북은 모두 분단의 피해자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에게 분단은 관망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천적 과제다. 따라서 남북 문제는 여야와 정권, 이념과 세대를 떠나서 민족적·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다. 이번에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기본계획안을 보면 남북의 공동번영과 한반도 평화통일 달성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이는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 이후 역대 정부가 추구하는 남북관계의 기본 틀로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목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목표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대북정책에 대해 적지 않은 국민이 그 실효성과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차기 정부에서는 지난 10년 간의 대북정책에 대한 좀 더 면밀한 평가와 치밀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 국민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물론 대통령은 주어진 임기 동안 국정 운영에 한 치의 빈틈이나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된다. 하지만 임기 말의 대통령 직무수행이 차기 정부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거나 운신의 폭을 제약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차기 정부가 추진해야 할 남북관계의 중요한 과제를 실질적으로 임기가 얼마 남지 않는 현 정부가 확정, 차기 정부로 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정치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한 부분이다.

독일 통일은 통일이 하나의 행사(event)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process)임을 보여준다. 사민당 출신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1970년부터 추구한 ‘동방정책’은 1990년 기민당 출신의 헬무트 콜 총리 때에 이르러 독일 통일로 완성을 보게 된다. 그 사이 동·서독 간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브란트 총리의 보좌관인 귄터 기욤이 동독 간첩으로 밝혀져 브란트 총리가 물러나고 동·서독 간에는 일시적으로 냉각기를 거치기도 했지만, 정권 변동에 관계없이 서독 정부가 일관되게 대 동독 포용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마침내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통일의 과정은 우리에게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우와 정치인은 무대에서 내려올 때의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피에르 E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는 “이제부터 여러분은 새로운 지도자를 따르는 본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는 고별사를 남기고 정계를 은퇴하여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 국민도 이제 그런 성숙한 지도자를 보길 원한다.

[[문화일보 200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