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이회창 출마와 정당 민주주의


동문기고 임성호-이회창 출마와 정당 민주주의

작성일 2007-11-16

<포럼> 이회창 출마와 정당 민주주의
 
임성호 / 경희대 교수·정치학
 
대선 후보가 진정한 지도자란 말을 들으려면 선거뿐 아니라 선거 후의 국정도 미리 고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당선이 되든 아니든 한 정치인의 출마는 결과적으로 선거 후 정치 상황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며 국정에 도움이 될 수도, 큰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선거 당락을 넘어 자신의 출마가 선거 후 국정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도 염두에 두고 고민했는지 의문이다.

이 전 총재가 어떤 생각으로 출마를 결심했는지는 알 길 없다. 자기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을지 모른다. 5년 전 억울하게 진 데 대한 한풀이를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보수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것을 경고하고 싶은 생각일지 모른다. 내년 총선 때 보수세력의 결집을 노린 것일지 모른다. 지나친 상상이겠지만, 범여권 후보들의 존재를 더욱 위축시켜 정권교체를 확실히 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일지도 모른다. 연작(燕雀)이 홍곡(鴻鵠)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이 전 총재의 심리에 대한 어렴풋한 추측을 통해서는 명확한 비판의 근거를 찾기 쉽지 않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비판도 논외로 하자. 격렬한 당내 경선을 거쳐 당 후보가 정해진 지 제법 지난 시점에, 그리고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둔 시점에 당 원로(사실 창당자)가 느닷없이 탈당해 출마를 선언했다. 명백하게, 정당한 절차의 회피 내지 거부이자 일종의 경선 불복종이다. 이 전 총재 스스로 그 점에 대해선 사과했다. 어떤 돌팔매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절차 훼손은 죄송스러우나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한 살신성인이라는 출마의 변 앞에서 절차 관점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다소 공허할 수 있다.

이 전 총재의 출마는 그의 심리나 절차민주주의 차원보다 향후 국정 운영에 결과적으로 끼칠 악영향에서 보다 분명하게 비판될 수 있다. 첫째, 그의 출마는 국민의 정치불신감을 총체적으로 악화시켰다. 지도자로서의 이회창에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사람도 정치인은 다 대권병과 권력 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노무현 정부의 ‘잃어버린 5년’을 얘기하던 국민 중 상당수는 정치권 전체를 불신하게 됐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국정 운영의 최대 저해요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전 총재의 출마는 당선과 상관없이 선거 후 국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둘째, 이 전 총재는 ‘출마선언문’에서 “기본을 경시하거나 원칙없이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자세로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없다. 또한 중요한 것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뚜렷한 신념과 철학이다. 이것 없이는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재 자신은 과연 그같은 지적으로부터 자유스러운가. 이 전 총재의 주장은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보수 진영을 흥분·동원하는 전략에 의존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 전 총재가 완충지대로서 중도의 목소리를 작아지게 하면 누가 이기든 차기 대통령은 국정을 원활하게 이끌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셋째, 이 전 총재의 무소속 출마는 당내 경선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정당의 존재 가치를 반감시킴으로써 선거 후 국정 운영에서 구심력을 찾기 더욱 어렵게 한다. 정당 기율과 단합이 너무 강해도 안 되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존재하지 않으면 국정 운영은 추진력을 받을 수 없다. 정치의 지나친 개인화로 인해 국정 위기가 올 수 있다.

이 전 총재의 출마가 선거 결과와 관련해 곧 잊어질 에피소드에 그칠지, 쓰나미가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다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출마 선언이 선거 후 국정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출마에 앞서 앞으로의 국정까지 장기 안목으로 살펴야 한다고 말하면 너무 순진한 요구일까. 씁쓸한 마음이 든다.

[[문화일보 2007-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