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노동일-헌재와 신뢰의 위기
[fn시론] 헌재와 신뢰의 위기
- 노동일 (법학77/ 29회) / 경희대 법대 교수 -
강만수 장관의 실언(?)이 몰고 온 파장은 다층적이다. 종부세 위헌소송 결정을 앞두고 헌재와 접촉했고 일부 위헌이 예상된다는 그의 발언은 헌재와 행정부 차원을 떠나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문제의 뿌리는 ‘영혼이 없는’ 공직자들에게 닿아 있다. 2007년 3월 당시 재경부 차관은 종부세의 위헌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종부세를 도입한 8·31 부동산 대책 수립 시 위헌 가능성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과 ‘충분한 설명’을 했고 위헌소송은 “입법 당시 충분히 검토하면서 예상했던 것”이라는 얘기였다.
올 8월 헌재에 제출한 의견에서도 정부는 종부세의 합헌성을 주장한 바 있다. 정부가 아무 설명 없이 돌연 입장을 180도 변경하고 헌재에서 이를 관철하려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굳이 공을 세우기 위해 나서지 않았어도 될 일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강 장관의 발언을 평가하는 시각은 여야의 싸움처럼 정파적이다. 단순히 ‘무심한’ 혹은 ‘무신경’한 것으로 나무라는 의견은 여당적이다. 국기(國基)를 흔들고 헌정질서를 훼손한 엄중한 사태로 규정하는 것은 야당적이다.
둘 중 어느 시각이 옳은지는 지금부터 대응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별 것 아닌 문제로 두루뭉술 넘기려고만 한다면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엄중한 사태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심각한 사태로 보고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경우 비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헌재는 짧은 기간에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조정자로서 위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지난 9월 1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헌재가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국가사회에서 발생하는 헌법적 분쟁을 신속히 그리고 종국적으로 해결하여 국가사회를 동화적으로 통합해야 하는 소명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이제 성년이 된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 같은 위상을 얻기까지는 물론 재판관·연구관 등 헌재 구성원들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에 대한 당사자들의 대승적 승복이 없다면 제 아무리 정교한 논리라도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민의 자발적 복종이 없다면 헌재의 권위 역시 모래 위에 쌓은 성이다.
이번 사안은 최소한 중립성 측면에서 헌재의 위상에 심각한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종부세 위헌소송은 대립되는 당사자가 있는 사안이다. 한쪽 당사자인 정부가 헌재 관계자를 별도로 만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부적절하다. 관계자가 재판관인지 연구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구나 정부는 종부세가 합헌이라는 기존의 주장 대신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상대방에게 새로운 주장에 대한 반박의 기회를 주지도 않은 채 결정 선고일을 잡았다면 절차적 정의를 주장할 수는 없다.
헌재는 종부세 위헌소송에 대한 결정을 원래 발표대로 오는 13일 선고할 예정이다. 18일까지 예정된 국회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 중이다. ‘세대별 합산 위헌’을 예견한 강 장관의 말이 틀린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강 장관의 예지력이 빛을 발할 경우 그 후폭풍은 예측불허다.
강 장관의 발언이 실수인지 천기누설인지는 국회 진상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다. 아니면 당사자들의 주장과 의원들의 호통만 있고 흐지부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정치적 공방은 금방 잦아들 것이다. 종부세 아니어도 쌀 직불금 국정조사 등 정쟁거리는 즐비하다. 또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정치적 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와중에서 헌재의 신뢰에 가해질 상처는 쉽게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결정일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비상조치를 강구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정 연기 후 새로운 주장에 대한 반박 기회를 부여하는 등의 절차를 밟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을 쌓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허무는 것은 순식간이다. 부적절함(being inappropriate)은 물론 부적절해 보일 수 있는 외관(appearance of being inappropriate)조차 경계해야 하는 것이 중립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인 것은 그래서다.
[[파이넨션뉴스 2008-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