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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 타이탄 에탄 호수에 ‘생명체’?
[과학칼럼] 타이탄 에탄 호수에 ‘생명체’?
- 김상준 / 경희대교수·우주과학과 -
쌀쌀해진 가을 날씨와 나빠진 경제 때문에 서민들은 더욱 추위를 느끼는 요즘이다. 개인적으로도, 갑자기 높아진 환율 때문에 매년 이맘때 열리는 미국행성천문학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부족한 연구비를 쪼개 대학원생만 보내 연구 발표를 하게 하였다. 이번 학회는 미국 뉴욕주에 있는 코넬대학에서 열렸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인터넷으로 학회 발표를 생중계하여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연구실에서 편히 볼 수는 있었다. 대학원생들에게 세계학술대회에서의 학술발표는 세계무대에서의 ‘데뷔’인 셈이므로 본인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젊은 과학자들을 중견 과학자들은 유심히 보아 평가를 하기 때문에 학술대회장은 인재를 발굴할 수 있는 일종의 인력 시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번 행성천문학회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카시니 탐사선이 보내온 토성의 달, 타이탄 북반구 영상에 무수히 많이 보이는 호수일 것이다. 타이탄은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지구와 비슷하게 짙은 대기를 가지고 있는 위성이다. 대기의 성분은 지구와 비슷하게 질소 분자가 대부분이지만 산소가 거의 없고 그 대신 메탄과 에탄이 많이 있다. 따라서 발견된 호수들은 액체 메탄 혹은 액체 에탄으로 차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어 왔는데 몇 달 전 애리조나대학의 브라운 박사팀이 드디어 이 호수의 분광학적 특성이 액체 에탄과 같다고 네이처 학술지에 발표하여 사실상 액체 에탄 호수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 조그만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 -
그런데 우리 대학원생과 공동연구를 하던 파리천문대의 구탕 박사는 카시니 데이터를 분석하다 수소 분자가 타이탄 북반구 대기 중에 많다는 것을 얼마 전 발견하여 그 결과를 이번 학회에서 발표하였다. 이 사실은 마치 지구의 호수에서 메탄 가스와 수소 분자가 발생하는 것을 연상케 하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지구 호수에서는 침전된 유기물들이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어 메탄과 수소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타이탄에도 박테리아가 있다는 징후인가? 타이탄 표면에서의 박테리아 서식 가능성은 3년 전 미국 나사연구원인 매케이 박사와 스미스 박사가 미행성천문학회 학술지 이카루스에 발표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메탄과 수소를 이용하는 박테리아가 메탄과 수소 분자를 소화하여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주에는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경우가 가끔 발견되고 성분이나 발생원리가 비슷하여 과학자들이 추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때도 있지만, 반대로 모습은 비슷하지만 내부 성분이나 발생 원리가 전혀 다른 경우도 있어 과학자들을 헤매게 한다.
며칠 전 팝뉴스 인터넷판은 우리 태양계와 비슷하지만 우리 태양계보다 어린 ‘쌍둥이’ 태양계를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문학자들이 발견했다고 보도하였다. 이 보도에 의하면 태양으로부터 10.5광년 떨어진 엘실론 에리더니라고 불리는 별이 우리 태양계와 비슷한 모양의 소행성 벨트와 외곽에는 우리 태양계의 카이퍼 벨트와 비슷한 지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카이퍼 벨트를 구성하고 있는 작은 천체들은 얼음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암석이 많이 포함된 소행성들과 다르다. 이 경우는 성분과 발생원리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럼 타이탄에서도 수소 분자는 지구처럼 타이탄 호수 바닥에서 기생하는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된 것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화학반응에 의해 생기는 것일까? 타이탄의 표면은 절대온도 93도가량이고 섭씨로 따지면 영하 180도나 되는 엄청나게 추운 곳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렇게 추운 곳에 박테리아가 존재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라돈 가스와 같은 방사능 물질들이 호수 바닥 암반에서 꾸준히 유입되어 에탄과 화학 반응을 일으켜 수소분자를 만들어 타이탄 공기 중에 퍼뜨리는 것은 아닐까? 안타깝게도 아직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카시니가 보내오고 있는 추가 자료 분석과 대형 망원경을 사용한 꾸준한 관측이 요구된다.
- 그 집요함이 노벨상의 원동력 -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서구과학자들에 의해 세계적 학술지에 발표된 타이탄에서의 생물 존재 가능성을 주장한 논문이 이미 여러 편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용기(?)가 놀랍기도 하고 태양계 내에서 생물이 살기에 아주 열악하고 추운 곳이지만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타진하는 집요(?)함 또한 놀랍다.
어려운 우리 경제에, 당장 먹고 살기도 버거운 우리 현실에 먼 나라 타이탄에서의 박테리아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타이탄과 같은 미지의 세계에서 생물 존재 가능성의 한계상황까지 점검하는 그들의 도전적이면서도 진지한 학구적 태도가 서구 과학의 발달과 함께 많은 노벨상을 탄생시키지 않았을까?
[[경향신문 2008-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