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노동일-법대로 하면 편하다
[fn시론] 법대로 하면 편하다
- 노동일 (법학77/ 29회) / 경희대 법대 교수 -
‘좋은 변호사는 나쁜 이웃’이라는 말이 있다. 잘 아는 대로 미국의 격언이다. TV만 틀면 법과 관련된 영화가 나오는 데서 보듯 법 좋아하는 그들이지만 법을 들먹이는 일이 항상 유쾌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하물며 우리 말의 ‘법대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상을 불문하고 당장 야멸찬, 야박한 그 무엇을 떠올리게 된다.
‘법대로 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때로 인간관계 포기 선언과도 같다. 법을 따지면 앞뒤가 꽉 막힌 좁쌀영감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법대로 하면 불편하고 법대로 하면 불리하다는 생각도 일반적이다. 하지만 법대로 하는 게 융통성 없음의 대명사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편안함의 다른 말이 될 수도 있다.
무려 80여일간 겉돌던 국회가 가까스로 정상화되었다. 우여곡절의 사유야 수십 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국무총리의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 출석 문제였다. 특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출석하지 않아서 국회의원들의 심기를 자극한 것이다.
총리실은 총리가 특위에 출석한 전례가 없다는 ‘관례’를 불출석의 명분으로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62조 제2항은 “국회나 그 위원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무총리·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은 출석·답변하여야 하며”라고 규정돼 있다. 헌법이 총리의 국회 출석 의무를 명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위원회의 요구가 있었는데도 총리가 국회 출석을 거부했다면 헌법적 의무를 소홀히 한 것 외에 다른 설명의 여지가 없다.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문제도 있었다. 여야 원내대표들은 소관 상임위가 아닌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청문요청 시한이 지난 3개 부처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하겠다는 합의를 어렵사리 이끌어냈다. 청와대가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야당은 국회 원구성 거부로 맞섰다.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 동의를 요하는 공직자는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국무위원 등의 경우는 상임위원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해야 한다. 또 국무위원에 대한 청문 절차는 요청 후 20일 내에 마쳐야 한다. 20일이 지나도 청문절차가 종결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국무위원을 임명할 수 있다. 10일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다시 요청하는 것은 재량사항일 뿐이다. 이번처럼 국회 처리가 지연될 경우 국정공백을 막자는 것이 바로 법에 시한을 정해 놓은 취지다. 현재의 야당이 여당 시절 만든 법을 무시한 여야 합의는 명백한 법 위반이다. 원구성이 되지 않았을 경우를 예외로 하고 싶다면 법을 바꾸어야 한다. 유연한 해석이 법 규정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법대로 했다면 여야가 싸우느라 국회를 공전시킬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여야가 법대로 하는 관행을 만들었다면 국회법에 따라 국회는 저절로 열렸을 것이고, 무노동 유임금으로 국민세금을 축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법대로가 따분함의 다른 말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의 대명사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법(法)이란 말의 본디 뜻은 물(?)이 흘러 가는(去)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 않는가. 물이 흐르는 길을 막는 게 아니고 자연스레 흐르도록 만들어 주는 게 법이란 말일 것이다.
요즘 정부가 강조하는 법치주의도 마찬가지다. 불법시위 등과 관련, 시위대가 법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하다. 법과 원칙을 확립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법치주의의 본래 의미는 국가권력의 행사가 법에 따라야 한다는 데 있다. 행정은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해 행하여야 한다는 원칙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법에 의한 정치를 말한다. 정치가 법과 원칙을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도 법 이외의 것에 지배되지 않는다. 주권자도 법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본원칙도 법치주의의 다른 말이다. 한마디로 국가권력에 의한 국민의 권리 침해를 막자는 것이 법치주의의 개념이 생겨난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권력자들이 법을 엄격하게 지킬 때 국민들은 자연스레 법을 지키게 된다는 사실이다. 물이 흘러 가는 길이 법이듯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파이넨셜 2008-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