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이택광 - 노골적 엘리트주의 ‘국제中’
[시론] 노골적 엘리트주의 ‘국제中’
- 이택광 / 경희대교수·영문학 -
정부에서 국제중 설립을 허가한 모양이다. 이번에 당선된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소신이 작용한 것이라는 후문도 있지만, 일정한 수준이 되는 초등학생들을 선발한 뒤 추첨을 통해 국제중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기본 발상이다. 이런 발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 않을 수 없다. 중학교 입학부터 입시경쟁을 부추길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국제중 입학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상위 10% 계층의 자녀들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염려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제중의 설립은 그럴듯하게 ‘교육경쟁력 강화’로 치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될 놈만 되게 하자’는 엘리트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을 두 가지 들어보라면, 첫째는 부유층의 뻔뻔스러움이고, 둘째는 보수층의 역사 되돌리기일 것이다. 국제중 역시 이런 현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것 같다.
국제중 설립은 궁극적으로 과거처럼 입시경쟁을 초등학교 때부터 강화해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겠다는 취지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대학의 자율성 강화라는 명목으로 본고사를 부활시키려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 자율성이나 자유라는 말은 종종 강자를 위한 특권이라는 말과 동격을 이루는데, 국제중 역시 이와 같은 이념 위에서 추진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리 안전장치를 철저하게 한다고 해도, 국제중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은 한국에서 중산층 자녀 이상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입학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른바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의 자녀들도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국제중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소리다.
국제중 설립은 과거의 망령이 돌아온 것이지만, 그 모습은 훨씬 교묘한 것처럼 보인다. 국제중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 요건에 공인된 영어점수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서 공인된 영어점수이지 실제로 이런 입학요건은 초등학생들까지 ‘토익, 토플’ 학원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과열된 입시경쟁구도로부터 이득을 볼 이들은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학교도 아니다. 이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기껏해야 사교육 시장일 것이다. 이처럼 국제중은 교육적인 논리보다도 경제적인 논리에 맞춰 추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교육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패러다임은 지극히 근대적인 양적 측정 방식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급격하게 줄어들 학령인구를 감안한다면, 이런 평가 방식이 과연 언제까지 교육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한동안 학령인구가 줄어든다고 해도 엘리트 중심적인 경쟁구도는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진짜 국가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특정 계층이나 자본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서 진정한 교육의 백년대계가 하루빨리 서야 하지 않겠는가?
[[경향신문 22008-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