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숙-4년 만의 귀국


동문동정 황혜숙-4년 만의 귀국

작성일 2008-09-28

▲황혜숙 (간호68/ 20회)

지난 9월 17일 동문회관을 방문했다.
황혜숙 동문은 미주 동문회에서 7년간 부회장을 역임하고 모교와 미주동문회의 연합을 위해 힘쓰고 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이다.

--- 인터뷰 ---

< 미주동문회 분위기메이커 황혜숙 동문 >

“경희인들을 만날수록 경희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1년에 한번 미국에서 열리는 ‘북미주동문연합총회’에 다녀온 동문들이 입을 모아 한 여성의 이름을 들먹이며 “대단해”하며 감탄을 하곤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말로만 듣고 그러려니 했는데 지난 9월 17일 선글라스를 낀 한 여성이 동문회관을 방문했다.
“동문회관이 보고 싶어서요”하며 나타난 그녀가 바로 “대단해”의 주인공 황혜숙(간호68/ 20회) 동문이었다. 추석 연휴를 맞아 고국을 방문하여 가족과 친지들, 친구들을 만나며 모처럼모국의 따스함을 느끼던 차에 동문회관을 돌아보기 위해 왔다고 한다.

황혜숙 동문은 7년간 미주동문회 부회장을 하며 친목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동문들에게 보람과 기쁨을 주기 위해 스스로 분위기메이커가 되었다. 여성동문들의 참여가 저조한 그 곳에서 홍일점으로서 모임을 매끄럽게 이끄는 윤활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공로를 인정받아 수년 전 총동문회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황혜숙 동문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10여년 전 미국에서 열린 제 1회 골프대회 때부터 였다. 당시 우락부락한 스포츠맨들을 분위기에 적응시키는데 공헌하여 “국보 1호”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다. 그녀의 분위기잡기(?) 비결은 유머와 노래, 춤.... 몸에서 흘러나오는 ‘끼’에서 비롯된다. 음악이 흐르면 그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어서 관중들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스포츠댄스, 탱고, 차차차, 자이브.... 분위기는 어느새 춤판(?)으로 변해버린다.

미주 동문회의 옛날과 현재....

황 동문이 이민을 간 70년대에도 경희인들은 소규모의 동문회를 구성하여 서로 협조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그 당시는 한의학과 출신의 동문들이 많이 모였다. 이수호(한의38) 한의사의 경우 당시 회장으로서 조영식 학원장을 모시고 앞장서서 동문회를 이끌었다. 현재 콜롬비아 대학에서 한의학 강의를 하며 현직 한의사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
황혜숙 동문은 "우리 경희인들은 타학교에 비해 협동이 잘되고 무척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특히 골프를 잘 쳐서 미국에서 열리는 대학별 골프대회에서 매년 1위를 차지하고 있지요. 승부에 강하고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경희정신이 그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전재현 동문회장을 중심으로 젊은 동문들의 참여가 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민 성공사의 주인공...

75년도에 이민을 간 그녀는 한인회 이사장이자 청과상조회 회장인 남편과 함께 “이민 성공사”의 주인공이 될 만큼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잠자는 시간이 하루 3-4시간, 그 외에는 죽어라고 일을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고생하는 한국인들에게 가계와 트럭, 물건을 제공해 가며 미국 정착을 돕고, 베푸는 삶을 지속해 온 황동문 부부는 동문회에서도 감초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만사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 (I do my best)"가 그녀의 신념이다. 오래 전 학창시절 때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3년간 과대표를 하고 학회장을 겸임했으며 4년간 개근했던 그녀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경희의료원 정형외과에 취업하였고, 신경회과에서도 일하게 되었다. 졸업할 때 우수상도 받고....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황 동문은
“4년만에 한국에 왔는데 서울이 많이 변했네요. 동문회관도 훌륭해요. 우리 모교가 세계적인 대학이 되길 해외동문 모두가 바라고 있어요. 내년 60주년에는 많은 이들이 모교의 발전상을 보러 고국을 찾을 텐테... 해외 동문들이 기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경희인들을 만날수록 경희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