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이기형-시대유감
[시론] 시대유감
- 이기형 / 경희대 교수 언론정보학 -
시절이 참으로 수상하다. 오랜 기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혹은 ‘상식’이 위반되고 분해되고 있다. 요사이 ‘막나가는’ 권력의 행동과 그에 따라 재편되는 현실은 이른바 막장 드라마 속의 풍경보다 더 일그러져 있는 듯하다. 우리는 과연 제도와 과정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건강한 이견과 관점의 차이, 그리고 비판을 최소한이나마 허용하고 있는 건가?
언론인들 구속은 상식의 파괴
작금의 현실에 대한 회한과 분노는 필자만의 매우 ‘주관적’이고 과장된 감회는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뒤척이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정치와 미디어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복기하면서, 묘하고 엄혹한 느낌에 몸을 떨게 된다. 보듬을 수밖에 없는 애물단지이자 한편으로는 성취와 성과에 가슴 뿌듯한 한국사회가 아닌 다른 시공간에 불쑥 내던져진 느낌이다.
10여년 만에 언론인들이 구속되고, 이런저런 리스트가 정치와 대중적인 관심을 끌어당기는 폭풍의 핵이 되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압박하고 침해하는 몰상식한 폭력 앞에서, 그리고 지난 몇 달간 누적된 크고 작은 사건과 비극들 속에서 한 명의 시민이자 언론학자로 불안감과 자괴감, 그리고 책임감을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왜 책임질 만한 위치에 있는 많은 전문가와 정치인, 정책입안자, 담론생산가, 원로들은 해결책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 한국호에서 무력한 존재로 있는 건지.
지금의 언론현실을 얘기해보자. 도대체 사법당국이 특정한 시사보도 프로그램이나 방송사에 대해 해석과 판단을 지금의 형식으로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정치권력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당신들은 얼마나 언론의 역할과 공공성의 가치,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에 대해, 그리고 특정 방송 장르의 문법에 대해 고민해왔고 알고 있느냐고! 낙하산 사장과 외부의 개입에 반대하여, 11개월이 넘도록 싸우고 있는 언론사의 구성원을, 신중한 고려와 성찰 없이 쇠고기를 수입하려던 졸속정책에 대해 위험과 제도적 난맥상을 지적한 프로그램의 생산자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긴급하게 잡아가는 이들. 사법부가 내린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라는 표현 속에서, 정치적인 고려와 판단을, 그리고 어떤 식으로건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오만한 의지를 포개어 읽게 된다.
공익 위한 비판자 짓밟지 말라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이슈를 일정한 관점을 가지고 논하는 언론의 역할은 민주주의와 공화국이 건강한 뿌리를 내리게 해주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두말 하면 입술이 아플 만큼 교과서적인 사안을 지금, 다시 한 번 강조할 수밖에 없는 희비극적인 상황이 쓰리고 아프다. 정치권력은 시간의 흐름을 마구 돌려서 우리사회를 과거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구습으로 회귀시켜도 무탈하다고 정녕 믿고 있는 걸까? 집권세력은 쌓여가는 울혈과 갈등이 가져올 위험과 위기에 대해, 동시에 역사의 퇴행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겸허하게 행동을 바꿀 때이다. 정녕 대화와 협치를 거부하고 막무가내로 ‘법치’와 물리력을 전유하고 휘두르는 지금의 행태론 더 큰 파국과 갈등 그리고 저항을 부를 것이다. 제발이지, 공익과 공론을 위해 노력하는 비판자들을 짓밟지 마라. 진정 우리 사회의 안녕과 공익을 생각하는 마음이 한줌이라도 있다면.
[[경향신문 2009-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