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정진영-보호무역주의 파고에 직면한 FTA
<포럼>보호무역주의 파고에 직면한 FTA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세계적 경제위기를 맞아 많은 나라가 보호무역주의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경기침체로 도산 위기에 직면한 자국 기업들을 보호하고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에서다. 국민의 세금으로 금융 지원을 받거나 공공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외국 기업의 참여를 제한하고 자국 생산품 사용을 직·간접적으로 의무화하는 방법이 공공연하게 사용된다.
지난 1월 미국에서 7000억달러 경기부양법안이 협의중일 때 미국 의회는 강력한 국산품 사용(Buy America) 조항을 삽입하려고 했다. 그 법안에 따라 지원을 받는 공공사업에서는 미국산 철강재의 사용을 의무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나라가 비난하고 나섰고,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도 잘못된 보호무역주의에 우려를 표시했다.
다행히 그 조항은 국제무역협정을 위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단서를 다는 것으로 완화됐다. 따라서 WTO의 정부조달협정에 가입한 나라들의 경우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사업에 납품할 수 있게 됐다. 한국도 물론 이 협정에 가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가 정치적으로 매우 비중 있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변화한 국제 무역의 현실을 말해준다.
WTO 협정은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앞다퉈 자국 기업들에 대규모 금융 지원을 해주고 있고, 그 조건으로 국내의 생산과 고용을 유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다수의 개도국들은 공공연하게 관세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외국인의 고용을 차단하고 정부 지출의 해외 유출 효과가 적은 인프라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이러한 보호주의 경향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에 심각한 위협이다. 그러잖아도 경기침체로 줄어드는 해외시장이 보호무역으로 더욱 막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5일 워싱턴 주요 선진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 조치의 추가 금지를 제안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국내에서는 또다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가 미국에 불리하다고 비판해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데다 론 커크 무역대표부 대표지명자가 상원 청문회장에서 현 상태의 한·미 FTA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미 FTA 국회 비준동의를 반대해온 국내 민주당과 진보세력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미국 때문에 어차피 재협상을 해야 한다면 미리 국회 비준동의를 해서 망신당하지 말자는 그럴 듯한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말로만 그러는 것이다. 이들의 내심은 한·미 간에 재협상이 진행되면 거대한 한·미 FTA 반대집회를 조직해 또다시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제대로 하지 못한 한·미 FTA 반대시위를 이번에는 제대로 해서 FTA와 한미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겠다는 무서운 계산이 숨어 있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망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는 정치 집단들이 있다. 한·미 FTA를 자신들의 반미·좌파적 신념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자신들이 여당일 때 타결한 한·미 FTA를 야당이 됐다고 해서 반대하는 민주당의 태도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계적 경제위기와 높아지는 보호무역주의의 파고에 직면한 통상국가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미국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가 양국의 비준을 받아 조속히 발효될 수 있도록 정치권이 협력하기를 촉구한다.
[[문화일보 2009-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