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공우석-죽창… 붓… 그리고 죽순
▲공우석(지리76/ 31회, 모교 이과대학 학장)
요즘 대나무로 만들어진 죽창과 만장이 이념적 대립과 관련돼 논란이 되면서 애꿎은 대나무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나무는 사람의 의식주에 많은 혜택을 주는 식물로 바르게 알고 우리가 좋은 의도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죽창과 만장을 만드는 재료인 대나무는 주로 열대와 아열대를 중심으로 자라며 전 세계에 1200종 정도가 있다. 한반도에는 20여종이 주로 중부 이남과 제주도에 분포한다. 대나무는 줄기가 둥글며 속이 비어 있고 가볍고 탄력이 있어 가공이 쉬워 예로부터 건축재, 가정용구, 농기구, 악기, 완구, 무기, 관상용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됐다.
대나무는 우리 민족의 삶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아기가 태어날 때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대문에 치는 금줄에는 솔가지나 댓잎을 꽂았다. 오랜 친구를 이르는 죽마고우는 대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노는 놀이인 죽마놀이로부터 유래한다. 초례상의 양쪽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꽃병에 담아 두었는데, 푸른 댓잎은 변치 않는 부부애를 상징했다. 부친상을 당한 상주는 대나무로 만든 지팡이인 둥근 상장을 짚었다. 무속에서 대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상징으로 신을 부르거나 내리게 하는 신장대로 사용한다.
고향마을 뒷산의 대숲은 언제나 우리에게 베푸는 존재였다. 봄철 대숲의 죽순은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게 해준 구황식품으로 백성의 주린 배를 채워 주었다. 큰 비가 내리는 여름에 대숲은 홍수와 산사태 피해를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했다. 가을철에 베어낸 대나무는 목돈을 쥐어주는 생금밭이었고, 흉년에는 대나무 열매인 죽실에 멥쌀을 섞어 밥을 지어 먹기도 했다. 겨울의 대숲은 뒷산에서 불어오는 북풍을 막아주는 방풍림이고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재료의 공급처였다.
대나무는 먹, 종이, 벼루와 함께 문방사우를 이루는 붓을 만드는 재료였으며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였다. 대나무를 납작하게 깎아 만든 막대인 죽간은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글씨를 새기는 용도로 사용됐다. 대나무는 퉁소, 대금, 피리 등 악기를 만드는 재료였다. 집을 지을 때 벽과 지붕을 만들 때 대나무를 이용했고 문창살을 만들 때에도 댓가지는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나무 붓으로 쓴 글이 이웃에 깊은 상처를 안겨주지 않았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대나무는 활, 화살, 화살통, 죽창, 죽도, 대나무 다발로 화살을 막기 위해 제작된 방어용 무기인 죽패 등 여러 가지 무기를 만드는 재료였다. 긴 대나무로 만든 죽장창은 무예를 익히는 데 쓰던 창이다. 조선시대에는 화살을 만드는 재료였던 이대라는 가는 대나무가 자라던 곳은 군사기밀로 삼을 정도로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세종대왕은 북쪽의 오랑캐를 막기 위해 남쪽의 대나무를 북방에 가까운 동해 쪽 섬에 옮겨 심어 화살을 자급할 것을 명했다. 베트남 전쟁 동안 베트콩이 땅속에 파놓은 함정에 죽창을 세워놓았는데 상대방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리 사회에 죽창이 등장한 배경에 대나무로 만든 붓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 측면이 없는지 생각할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이웃을 향해 죽창을 사용하는 폭력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다. 시대가 어려워 죽순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조화로운 선율을 이루어내는 대나무 악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대나무로 만든 만파식적이라는 피리가 국민적 합심과 평화를 상징했다는 사실을 되새겨 우리의 자원과 잠재력을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을 때이다.
공우석 경희대 이과대학장·지리학
[2009. 6. 22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