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권영준-서민경제 살릴 신용회복제도
[기고] 서민경제 살릴 신용회복제도
- 권영준 / 경희대 교수·경영학 -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은 가운데,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위기극복의 경험과 처방전을 갖고 있던 나라로서, 겉으로 볼 때는 그럴 듯한 말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올 연말이면 끝난다고 전망하고, 내년부터는 경기가 V자로 회복할 것으로 추정하면서 정부의 경제운용을 그런 시나리오에 맞추어 왔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모든 중소기업의 대출을 무조건 1년 만기 연장을 해 주었고, 동시에 내년부터 경제가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기업구조조정도 미루고 1년만 참자고 시장을 설득했다.
그러나 진통제로 통증을 막는다고 질병의 근원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선진국 경제가 당장 내년에 V자로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데, 무역 비중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는 우리 경제가 내년부터 급격한 회복을 보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청년실업은 30%를 넘어서고 있으며, 대졸 취업자들의 체감 실업률은 50%에 육박한다. 또 개인들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비율이 149%로 5년 전보다 20%포인트 높아졌고, 서민이 이용하는 은행들의 연체비율이 급증한 것도 속으로 병들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지금이야말로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구조개선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 및 금융소외자들을 위한 신용회복대책들을 더욱 보강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잠재적 채무불이행자들을 위한 프리워크아웃 프로그램은 그 시사성이 매우 높다. 이는 경기불황으로 잠재적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금융기관 채무를 3개월 이상 갚지 못하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연체대출금에 대해 만기연장과 금리 인하 혜택을 주는 채무조정제도이다.
일각에서는 이 제도로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증가할 것을 우려하지만, 해당 요건 자체가 엄격할 뿐 아니라 이자 감면을 위해 자신의 신용등급을 낮추거나 각종 불이익을 감수할 무모한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는 차제에 금융소외자들을 위한 현행 신용회복지원 및 파산제도를 선진화할 수 있도록 각종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제도적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악덕 사채업자를 근절하고 법적 상한선을 무시하는 고금리를 받으면서 신용회복 지원을 외면하는 대부업체를 즉각 개혁해야 한다. 동시에 현행 사적 워크아웃제도인 신용회복지원제도와 법적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제도를 연계해 일부 브로커들에 의한 파산자 양산을 막는 제도적 조치가 시급하다. 또 아직도 채무자들의 보호가 미흡한 공정채권추심법을 개정하여, 채권내역서 발급에 따른 과다한 수수료 부담을 경감시켜주고 선진국같이 통신거부권이나 채무자대리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우물청소는 우물이 말라 있을 때 가장 깨끗이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경향신문 2009-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