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서-종잇장처럼 얇은 고막


동문기고 박문서-종잇장처럼 얇은 고막

작성일 2009-05-08


[박문서 교수와 함께 하는 ‘귀건강 365일’] 종잇장처럼 얇은 고막

- 박문서 /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이비인후과장 -
 
“소리가 너무 커 귀청이 떨어지겠다.”

소리를 지르며 이방 저방 뛰어다니는 애들에게 어르신들이 가끔 하는 말이다. 귀청이 떨어지겠다는 말은 너무 큰 소리에 고막이 터져버리겠다는 뜻인데 실제로 지나치게 큰 소리는 고막을 파열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스 폭발 사고 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흔히 고막이 찢어져서 오곤 한다. 과도한 소리의 압력이 고막을 지나치게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고막은 그 두께가 0.1㎜, 즉 종이 한장 두께밖에 안되므로 쉽게 찢어질 수 있다.

고막이 터져버리면 소리가 안 들릴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소리를 안쪽으로 연결해주는 뼈조직들이 괜찮고 고막만 손상이 되었다면 귀가 먹먹할 정도의 난청이 올 뿐이다. 그러나 그곳에 감염 등으로 인해 구멍이 고막에 남게 되면 만성 중이염으로 변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귀청이 떨어지는 또 다른 원인은 물리적 외상인데 그 이유는 다양하다. 고막이 터져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부부 싸움을 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들은 대개 왼쪽 고막이 터져서 온다. 왜냐하면 보통 오른손으로 왼쪽 뺨을 때렸기 때문이다. 아직은 여자 환자가 많지만 최근에는 부인이나 여자 친구한테 맞아 고막이 터진 남자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여권 신장(?)의 바람은 이비인후과에도 불어 오고 있는 것이다.

 

고막이 3번이나 터져서 온 학생도 있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싸우다가 그렇게 됐다”며 부모는 상대편 학생의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흥분했다. 하지만 3번째가 되자 치료하는 의사나 데리고 온 부모나 속된 말로 ‘맞을 만한 짓을 했겠지’ 하는 심정으로 다친 학생을 오히려 탓한 일도 있다.

터진 고막은 재생력이 높기 때문에 너무 큰 범위가 아니라면 2∼3주간의 치료로 아물어 붙는 수가 많다. 그러나 감기가 걸리거나 귀에 실수로 물이 들어가는 등 외부로부터 감염이 되면 구멍이 그냥 남게 된다. 이 경우는 인조 고막을 터진 자리에 붙인다. 그래도 재생이 안 되면 그때는 수술로 고막을 만들어야 한다.

귀후비개나 면봉을 잘 못 사용해서 고막이 뚫리는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상처 자리가 감염이 되는 수가 많아 잘 아물지 않고 만성 염증으로 진행해 중이염이 되기도 한다.

교통사고 등으로 머리를 다쳤을 때도 고막이 같이 찢어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머리뼈에 금이 갈 경우 그 금이 귀 쪽으로 이어지면 고막도 같이 파열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고막뿐만 아니라 소리를 전달해 주는 뼈 조직들도 손상이 가는 수가 많아 심한 난청이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큰 소리를 듣고 귀가 나빠지는 것은 대부분 고막이 상해서가 아니라 안쪽의 달팽이관에 있는 청각 세포가 너무 큰 충격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큰소리에 귀청이 떨어진다’는 말은 의학적으로 항시 옳은 것은 아니다.

[[파이넨셜 2009-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