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정치시평]청소년 죽이는 인터넷강국


동문기고 권영준-[정치시평]청소년 죽이는 인터넷강국

작성일 2009-05-08



[정치시평]청소년 죽이는 인터넷강국

- 권영준 / 경희대 교수·경영학 -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강국이다. 비록 지금은 포괄적 뇌물수수혐의로 검찰에 불려다니며 나라 망신을 시키고 있지만, 한 때는 해외출장 때에도 인터넷 댓글을 열심히 올리는 탈권위적인 대통령도 인터넷 힘으로 선출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나 MB 정부 들어서는 바로 정확히 1년 전에 국민들과의 소통부족과 신뢰부족으로 인한 촛불집회로 엄청난 곤욕을 치르더니, 급기야 소위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던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사이버모독죄 신설을 추진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인터넷중독 200만명, 초중고생이 40% 차지
하지만 정작 심각한 것은 자라나는 청소년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인터넷 중독 예방대책이다.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의하면, 인터넷 중독자가 200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고, 이들 중 초·중·고생의 비율이 40%를 넘어섰으며, 청소년 중독률이 성인의 두배 이상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초등학생의 중독율이 급증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에 의하면, 인터넷 중독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상자 모두에게서 정신질환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놀이미디어센터가 2006년부터 3년 간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인터넷 게임 이용실태를 조사했는데, 초등학생의 50% 이상이 성인등급의 피가 튀고 목을 자르는 행위와 같은 잔인한 게임에 접속한 결과 중독의 기준인 ‘내성’이 생겼다고 한다.
교육선진화라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출범한 MB정부는 2008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정부입법으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상정하여 조만간 통과를 기다리는데, 동법은 게임산업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짓도 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는 상상할 수 없는 악법이다.
제3조는 누구든지(아동 청소년 포함), 어떤 내용(폭력적이거나 음란한 내용을 포함한)의 게임도 예외없이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제17조에서는 그러한 권리(누구든지 게임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동법에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 내용도 규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인터넷 중독에 빠져 있는 청소년의 심각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는 동법을 비롯한 모든 정책에 중독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과몰입’이라는 국적불명의 신조어를 사용하는 등 지극히 책임회피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동법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아동 청소년의 게임중독을 예방하기보다는, 산업진흥 논리로 조장하는 것으로써 매우 위험한 악법이라 할 수 있다.
자금주들이 게임개발업자들에게 접근하여 “당신이 개발하는 게임 때문에 피씨(PC)방에서 애들 한 두명쯤 죽어나가게 할 자신이 있으면 돈은 얼마든지 대주겠다”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들의 황금만능주의에 정부가 나서서 “모든 청소년들에게 어느 시간대이든 게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겠다”고 하는 황당한 법적 체계를 만들겠다니 과연 이런 나라를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악법은 완전 폐기시키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청소년 게임중독 조장하는 ‘게임산업진흥법’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위한 심야시간 접속제한(셧다운제도), 일정시간 접속하면 게임 진행이 불리해지거나 정지되는 피로도 시스템도입, 게임이용정보를 보호자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등의 청소년 보호대책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지 않는 한 어떠한 게임법도 제정되어서는 안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내일은 어린이날이다. 아무리 입으로 선진화를 외쳐도 다음 세대가 병들고 죽어가면 선진국은 없다.
푸른 꿈을 꾸어야 할 어린이들을 인터넷중독으로 파멸시키면서 아무리 녹색성장을 외쳐도 그것은 녹색으로 회칠한 무덤일 뿐임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내일신문 2009-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