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언-살아서 꽃피는 정조의 꿈


동문기고 김동언-살아서 꽃피는 정조의 꿈

작성일 2009-05-04

[문화마당] 살아서 꽃피는 정조의 꿈

- 김동언 /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획감독·경희대 교수 - 
 
어젯밤 꿈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을 뵈었다. 나쁜 꿈은 아니었다. 꿈을 깨고 하루의 일상이 시작되면서 꿈의 내용은 점차로 가물가물해졌다. 그래도 어머님을 꿈에서나마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조선을 대표하는 여인 중의 한 사람인 황진이는 ‘꿈’이라는 시에서 보고픈 임을 만나기 위해 꿈길을 선택한다. 꿈길에서도 만나지 못하고 자꾸만 어긋나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을 꿈에서라도 볼 수 있는 것은 참 좋은 꿈에 해당한다. 꿈을 왜 꾸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가 않은 것 같은데,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라는 책에서 꿈이 인간의 무의식적인 소망을 충족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며, 이것을 활용하여 환자를 치료하려고 시도했다.

사전에서는 꿈을, 첫째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둘째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셋째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잠을 자고 비현실적이더라도 바라고 싶은 희망과 이상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난 일상의 영역에서도 꿈을 꾼다.

여간해서 꿈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꿈을 이루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인류 역사를 발전시키는 큰 힘이 되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꿈들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흑인해방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의 1963년 8월28일 워싱턴 평화행진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는 현대 미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꿈으로 기록된다.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그의 꿈은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유효하다.

‘우리 역사에서도 위대한 꿈을 꾼 사례가 많이 있다.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의 저자 김준혁 박사는 정조가 세운 수원의 화성을 꿈의 도시라고 했다.

조선사회 개혁을 위해서는 국왕과 함께 개혁을 주도할 선진적 인물과 도시가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조를 설명하는 핵심 단어는 개혁이다. 정조가 추구한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비제도를 없애고 신분해방을 통한 평등사회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당시가 봉건군주 사회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혁명이다. 정조의 꿈이었다. 실제로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면서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방법들을 동원하였고,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와 낙성잔치에서도 왕실문화와 광대들의 평민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대동의 문화를 추구하였다. 정조는 자신의 꿈을 수원 화성에서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꿈은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기 때문에 정조의 꿈 역시 당대에는 이루지 못하고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정조가 꿈꾸었던 백성을 위한 정치철학과 대동의 문화는 문화의 세기와 문화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오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수원화성국제연극제’는 화성 축성 2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문화예술축제다. 올해로 수원시는 시승격 60주년이 되는 해다. 수원시의 회갑잔치다.

정조가 했던 것처럼 오늘날 다시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시민들이 함께 신명난 대동의 잔치마당을 벌이는 꿈을 꾼다.

정조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조의 꿈은 살아서 이 시대의 문화를 더욱 꽃피우는 동력이 되고 있다.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면 꿈이란 꾸어 볼 만한 것이다.

[[서울신문 200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