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최승환-北 금강산 자산 몰수, 대가 치르게 해야
▲최승환(모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북한 당국은 금강산 관광지구 내에 있는 한국 정부와 한국관광공사 소유의 5개 부동산·시설(이산가족면회소, 소방서, 한국관광공사 소유의 문화회관, 온천장, 면세점)을 몰수하겠다고 23일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지구 내의 현대아산 등 남측 민간업체의 부동산·시설은 동결하며 그 관리 인원을 모두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남북 간의 금강산 관광사업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국면으로 들어섰다. 1998년 11월18일에 개시된 남북간 금강산 관광사업은 북측의 금강산 자산 몰수 때문에 남북 공영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사실상’ 막을 내릴 처지인 것이다.
수용이란 타인이 소유한 자산에 대한 강제적 접수를 의미하는데, 통상 국가기관이나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민간기관이 타인 소유의 자산을 접수하게 된다. 보상없이 행하는 수용을 몰수라고도 한다. 일반 국제법상 자국 내 외국인 자산에 대한 수용은 수용국의 국가 경제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주권 행사로 인정되기는 하나, 수용권은 결코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며 국제법상 일정한 제한이 부과된다. 수용이 국제법상 합법적이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공익원칙·비차별원칙·보상원칙 등 세 가지 원칙을 충족해야 한다. 따라서 사익을 목적으로 하거나, 내외국인을 차별하거나 특정 외국인 자산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보상없는 수용은 관련국이 국가책임을 지게 된다.
2003년 8월20일에 발효된 ‘남북 투자보장 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자기 지역 안에 있는 상대방 투자자의 투자자산을 국유화 또는 수용하거나 재산권을 제한하지 않으며 그와 같은 효과를 가지는 조치(수용)를 취하지 않기로 합의했고(다만, 공공목적으로 수용 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예외), 수용 조치를 취한 날부터 지급일까지의 일반 상업이자율에 기초하여 계산된 이자를 포함한 보상금을 보상받을 자에게 지체 없이 지불하기로 합의했다(제4조). 따라서 ‘장기간 관광 중단으로 북측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이유로 취해진 수용 조치는 ‘공공목적’으로 취해진 수용이라 볼 수 없으며, 보상없는 몰수 또한 ‘남북 투자보장 합의서’를 위반한 것이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총괄하는 북한 내각 산하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몰수된 부동산들은 법적 절차에 따라 공화국이 소유하거나 새 사업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국제법과 일반적인 투자보장협정에도 반하는 일방적인 자산 몰수로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수 없다. 진정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거나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상 외국인 투자자산에 대한 적절한 보호가 필수적임을 북한 당국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북측의 이번 금강산 관광지구 내 한국측 자산 몰수는 자충수일 뿐이다.
북측이 주장하는 관광중단으로 인한 피해는, 2008년 7월11일 한국인 관광객이 저격살해된 데 대해 한국 정부 당국이 요구한 사과와 진상규명, 재발방지책 수립, 관광객의 신변안전보장 등을 북한 당국이 외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북측이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겠는가.
북측의 일방적인 자산 몰수는 반인권적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 당국은 북한의 이러한 자산 몰수 조치에 흔들림 없이 원칙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북한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함으로써 한국이 피해를 감수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점을 행동으로 확인시켜주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 화해·협력과 상생을 회복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현명한 판단과 정당한 조치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2010. 4. 26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