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상처는 애착에서 온다.


동문기고 안호원칼럼-상처는 애착에서 온다.

작성일 2010-10-28
흔히 정치권에서 보면 형님, 아우 하는 관계치고 끝까지 좋게 가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김태호 전 총리후보자와 그를 청문회를 통해 낙마를 시키는데 아주 결정적인 저격수 역할을 한 민주당 박 모 의원과의 관계가 바로 그러한 것 같다.

김 후보자로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되어 버렸다. 물론 박 모 의원은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분했을 뿐이라고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당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아픔이고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흉기가 아닌 말로 상대에게 아픔을 안겨준다. 그래서 세상은 믿을 사람 없고 무섭다. 물론 형님 동생하며 지내는 관계가 모두 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솔직히 잘 나가는 사람들끼리는 당장 잘 지내기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이유는 서로가 ‘위광(威光) 효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또한 지속되기는 결코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어느 시점에선가는 이해관계가 충돌되면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개 그럴 경우 형님, 아우관계가 무색해질 만큼 한 치의 양보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정치권의 이런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바람 같은 인생 별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젊은 나이에 총리 한 번 해보겠다고 폼 내다 청문회 자리에서 호형호제 했다는 이에게 난도질을 당한 채 지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한 순간에 날아가는 그 모습이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같은 상처는 애착에서 나오는 것 같다. 사실 애착을 버리면 아픔 같은 것은 없다. 남자에게 얼굴이 못 생겼다고 말해도 별로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에게 얼굴이 못 생겼다고 하면 크게 상처를 받는다. 그 이유는 여자의 경우 얼굴이나 몸매에 대해 남자보다 더 크게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같은 상처를 받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스스로 애착을 갖는 부분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자기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발버둥을 포기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심각한 언어의 공격도 별로 상처가 되지를 않는다. 살기 위한 방편으로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적(大敵)의 공격조차도 나의 성숙과 나의 변화에 촉매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별로 시답지 않은 일로 처가 쪽 젊은 사람이 자신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내게 삿대질을 하면서 고함까지 지른 적이 있었다. 내가 말한 의도를 잘못 받아들여 그런 행동을 취한 것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억울하게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그 분한 감정이 풀리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또 어느 모임에서도 본인은 분명히 했다고 하는데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신뢰를 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런 때일수록 세상일이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음을 더욱 더 깨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것도 나이를 먹은 탓일까, 시들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에게서 받은 상처의 아픔을 어우르며 잠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거기서 깨달은 것은 모든 일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하나가 꼭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마다, 등장인물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게 전개되고 시간대도 다르지만 언제나 등장하는 ‘나’ 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어도’ ‘내가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어도’ ‘내가 그 시간에 없었다면’ 하는 생각에 미치자 모든 일의 결과는 ‘나’ 라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지금의 처한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말대로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있어 원인제공자는 남이 아닌 바로 ‘나’ 에게 있다는 것, 나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는 것을 의식한다면 크게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돈도 권력도 기력마저도 떨어졌을 때 끝까지 함께 갈 사람은 결코 잘나 보이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먼저 배신한다.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고 낮추는 겸손하고 우직한 사람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인생, 정치,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나’에 대한 애착을 버리자.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