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색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로보자


동문기고 안호원칼럼-색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로보자

작성일 2010-07-15
교육에서 강조하는 용어 중 ‘피그말리온(Pygmailon)효과’ 라는 것이 있다. 남이 나를 존중해주고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사람은 그런 쪽에서 변하려 노력하고 또 그렇게 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는 이론이다. 반대로 ‘스티그마(Stigma)효과’ 가 있는데 이는 피그말리온 효과와는 정 반대로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자신도 모르게 나쁜 쪽으로 변해가는 것을 말한다.

사회학에서도 ‘거울 자아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즉 부모나 스승 또는 직장의 상사등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말 생각하는 그대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한나라당이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치루는 가운데 후보들이 상대죽이기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대만의 반체제 인사이기도 한 보양의 저서 ‘추악한 중국인’ 에 나오는 비유가 생각난다.

지도자를 잘못 뽑는다는 것은 마치 옷을 재단하는 재봉사를 불러다 대문을 고치게 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러다보니 대문을 제대로 고칠 수 없다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재봉사에게 눈이 멀었느냐고 질타하고 이에 뒤질세라 재봉사는 옷 짓는 사람에게 대문을 고치게 한 사람 눈이 멀은 것 아니냐고 반박하며 남을 탓한다는 것이다.

보양 선생이 비유를 통해 강조 하는 것은 국민의 감식안(鑑識眼)이다. 지도자를 제대로 판별해 선택을 할 줄 아는 눈이 있었다면 오늘 날 나라가 이렇게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렀어도 너 나 할 것없이 곰보와 미녀 조차 구분 못하고 그저 치마 입은 것만 보고 군침을 흘리는 눈을 갖고 있었으니 이제와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두가 공범인데...

특히나 6.2 선거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불과 집권 2년반만에 악취가 진동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은 아직도 그 원인을 밝혀 시정하기보다 남을 비방하기에 여념이 없다. 여 야를 불문하고 모두가 말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설처대지만 내 눈으로는 권력의 달콤함만을 좇는 부나방들 같다.

오래 전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 일어났다. 어떤 한 남자가 선그라스를 끼고 화장실에 들어서면서 화장실이 어둡다고 투덜거리자 함께 들어오던 아들이 “아빠 선그라스를 끼고 들어오면서 어둡다고 하면 어쩌자는 거냐”며 선그라스를 벗으라고 했다. 색안경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 화장실이 어두웠던 것이다.

어둡게 보이는 것은 색안경을 벗으면 되지만 과욕의 열정으로 침침해진 눈은 무엇으로 닦아야 깨끗하고 선명해질까. 정치나 정책을 다루는 선량들도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렇게 시끄럽고 어수선 한 것은 아닌지. 아들의 말을 통해 모든 문제의 답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문제에서 얻어짐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세상이 어수선해지면서 정치적인 칼럼을 자주 쓰게 되었다. 내 펜이기도 한 지인이 이런글을 보면서 우스게 소리로 정치계에 나가고 싶어 그런 글 쓰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런 생각은 가져본적이 없다. 또 다른 지우의 지적처럼 난 돈도 없고 거짓말도 시키지 못해 정치인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나를 두고 전형적인 보수 기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난 많은 생각을 하며 나 역시 노안(老眼)의 시력으로 세상을 잘못된 편견의 시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가 하는 자성의 마음으로 자신을 뒤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한 편으로는 눈이 등불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 올리면서 이 세상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세상이 어두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면서 조심스럽게 글을 쓴다. 내 판단이 다 옳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글을 쓰면서도 나에 대한 혼란가 함께 회의감을 느끼면서 절필을 생각해 본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펜을 놓지 못하는 까닭은 그만큼 정치에 역사가 퇴조되고 국민 정서 또한 퇴색되면서 깊이 생각하기보다 당장을 위한 포퓰리즘에 빠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정책을 다루는 의정자들이 자신의 노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채 무조건 희미하게 보이는 물체만을 탓하는 우(愚)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색안경을 벗고 다초점 렌즈로 안경을 바꿔 끼자 그래서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바른 정치를 하게되고 맑고 밝은 사회가 될 것이다.

‘삼 밭의 쑥’ 이라는 뜻의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말을 국회의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해석하자면 쑥은 보통 곱게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똑바로 자라는 삼과 함께 크다 보면 붙잡아주지 않아도 곱게 자란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쑥이되더라도 삼과 함께 똑바로 자라는 것 같이 더불어 사는 공생의 정치를 했으면 한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하겠느뇨?”성경에 있는 말씀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