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 지금 이 나라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동문기고 안호원칼럼- 지금 이 나라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작성일 2010-06-24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특별히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의 가장 비극적 수치요, 참혹한 상처를 남겼다. 민간인을 포함 무려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1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이 거리에서 울부짖었고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60년 전 6월의 흔적이 아직도 생생한데 불행하게도 많은 이들에게서 잊혀져가고 있다.

사회학자 레몽 아롱의 남침 설을 부인하다 북한의 남침이 역사적 사실로 들어나자 북한이 남침을 하도록 미국이 함정을 팠다며 ‘새로운 미래를 위한 진보적 폭력’ 이라는 억지 논리를 펼쳤던 프랑스 사르트르를 닮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객관성. 보편성과 소통하지 못하는 주관은 억지요 아집일 뿐이다. 이름깨나 있는 지식인이나 내로라하는 정치가, 이론가들이 사르트르의 도그마의 허상에 눈이 멀어 얼토당토않은 억지를 부리는 모습은 늘 깨어있는 우리 가슴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구호를 내걸으며 운 좋게도 선거판을 뒤바꿔놓았다. 문제는 좋은 전쟁도 없고 나쁜 평화도 없다는 것이다

나라를 수호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좋고 나쁘고의 차원이 아니다 불가피한 역설일 뿐이다. 그래서 그 역설 때문에 국민들은 4대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힘겹게 국방비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그 역설마저 거부한다면 핵탄두 앞에 구걸하는 ‘비굴한 평화’ 또는 빼앗기듯 퍼주기만 하는 ‘안보의 뒷거래’ 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굴종이다. 그런 곳엔 자유와 진보가 있을 리 만무하건만 그것을 좋은 평화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자유와 진보의 깃발을 내흔들며 6.25전쟁을 퇴색시키는 등 국민을 기만해왔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지만 ‘전쟁이 나면 젊은이들이 끌려가 죽는다.’ 인터넷 네티즌 사이에 떠돌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심지어는 군에 있는 장병들이 ‘이명박 당 찍으면 전쟁나고 전쟁나면 애궂은 우리가 죽는다’ 며 한나라당은 무조건 찍지 말라는 말을 부모에게 했다는 이야기들, 그런 것들이 젊은이들의 투표 방향을 결정짓게 했다는 소문들....민족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이들이 일부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해 ‘전쟁이냐 평화냐’ 의 자극적 선동에 휘말려 ‘자유냐 굴종이냐’의 엄숙한 고민을 회피한다면 그리고 북한의 불바다, 전면 전, 무자비한 타격 따위의 심리전에 기죽어 ‘자유의 가치’를 포기하고 그저 당장에 일신이 편안한 ‘굴종의 현실’을 택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국가 백년대계인 교육은 실패 할 것이고 나아가 자유마저 잃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단지 표를 얻기 위해 6.25를 모르는 전후세대인 젊은이들의 심리를 부추기며 역이용한 야당들, 6.15기념식을 한다면서 현 정부를 비난하고 천안 함 피격사건에 대해서는 북한에 단 한마디 반성도 촉구하지 않는 집단들, 하나가 되어도 부족한 시점에서 유엔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이적 단체, 불법으로 북한에 가서 이적 행위를 하는 종교인. 남쪽의 군사독재에 이를 갈며 저항했던 지식인, 종교인들이 북쪽의 인권마저 없는 선군 독재에는 어찌 그리 턱없이 유연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처럼 “칼을 녹여 쟁기를,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 평화의 날을 더 없이 소망하지만 동족의 젊은이 46명의 고귀한 생명을 어뢰로 몰살 시키는 선군이 북에 버티고 있는 한 불행하지만 아직은 칼을 갈고 창날을 세우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우리 민족끼리 느껴야만 하는 섬뜩한 실체다. 안타까운 것은 일부 전교조 교사들의 경우 몇 해 전 까지 6.25전쟁을 조국 해방전쟁으로 묘사한 자료집을 읽고 학생들에게 왜곡된 교육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 처럼 6.25에 대한 우리 청소년들의 무지와 무관심은 이런 지각없는 정부, 정치인, 언론사, 사회단체들의 합작품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야당은 여전히 햇볕정책운운하며 현 정부를 질타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지난 10년간 햇볕 정책으로 변한 건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다. 남한 사회가 민족, 동포, 평화 통일이라는 감성에 푹 빠져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심마저 허무는 동안 북한은 오히려 핵 실험을 강행하는 등 안보 불안을 극대화 시켰다. 이와 함께 남북 간에 큰 긴장 없이 평화가 유지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군마저 기강이 해이해지고 나태해졌다.

그저 같은 동족인데 설마하니...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녀라는 풍조로 흘러간 것이다. 우리 군 만이라도 엄정한 기강과 강인한 기개로 뭉쳐있었더라도 천안 함 피격사건은 애당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일부 정치인과 정당, 시민단체가 천안 함 피격과 관련 그 책임을 현 정부에 묻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더구나 안보문제를 정치적 이해에 관련시켜 국민을 호도하는 망 말은 실로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온갖 간난(艱難)으로 자신과 집안이 풍비(風備)박산이 되면서도 나라를 지켜온 호국영령들에게 더 이상 망령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사실 야당, 진보세력은 이제껏 별다른 정책도 없이 반정부 투쟁만 일삼아왔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안보의 백년대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비춰졌다.

객관적으로 사실마저 거부하는 병적 부인주의(Denialism)에 빠진 정치인들이나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단체와 인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KBC에서 특집드라마로 반영되고 있는 ‘전우’의 경우도 일부 네티즌들이 반공 이데올르기로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50~60대를 겨냥한 오후 시간대로 맞췄다고 하는 비난의 글이 떠돌아다니는 상황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모르면서 자유방임에 지친 무지의 소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안보무지에서 국방백서에 ‘주적개념’을 명시하는 방안이 최근 재논의 되자 인터넷에 험악한 음모론까지 제기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이 국가 안보의식이 결여된 만큼 반공드라마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계기로 전쟁과 공산당을 모르는 전후세대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반공교육이 정례적으로 실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타깝게도 독재와 빈곤의 아픔과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정말 이런 나라를 올바르게 지켜낼 수 있을까. 모두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고 희생은 싫고 쉬운 애국만 말하려 한다면 이 나라를 위해 누가 싸울 것이며 목숨을 버리겠는가. 진정한 애국은 공동체를 위해 맡겨진 의무를 수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더라도 책임의식 때문에 해내는 것이다. 그것이 참 용기고 애국하는 길이다. 지난 23일 새벽 남아공화국에 펼쳐진 태극기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태극전사들이 월드컵16강에 오른 것도 12번을 달고 뛰는 국민들의 염원과 하나가 되겠다는 공동체 의식 때문이다.

그라운드의 선수의 합은 11이었지만 역할, 책임, 협력, 희생이 어우러지면서 팀의 합이 무한대가 된 것이다. 월드컵 응원 열기를 국가안보에 연결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심을 생각해본다. 과거와 달리 태극기를 보기도, 애국가를 듣기도 어려워진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나라를 지키고 번성케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를 위하는 일이다.

천안 함 침몰을 규탄하는 국회의 공동결의안 하나 못 만들고 유엔과 중국에 구애를 보내야 하는 대한민국의 처지가 참으로 애처럽고 착잡하다. 보훈의 달 6월은 가지만 잊어서는 안 될 6월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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