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 신도들은 생명의 말씀을 듣고 싶어한다


동문기고 안호원칼럼- 신도들은 생명의 말씀을 듣고 싶어한다

작성일 2010-04-30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4대강 사업, 천안 함 침몰, 금강산 남측 사유재산 동결 등으로 국론 분열 현상이 심각하다. 서로 힘을 모아 동북아의 중심으로 우뚝 서고 세계를 향해 선진 대한민국으로 나가야 할 시점에도 불구, 서로 분열하고 다투며 국력을 낭비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른다.

물론 이 같은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따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부재인 것만 같다.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의 일방적 주장만 내세울 뿐 국가의 백년대계와 통일 한국 시대를 놓고 진지하게 마주 앉아 타협점을 찾는 소통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4대강 사업이 생명을 살리는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종교인들과 시민단체가 생명을 죽이는 정책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 장로회(이하 기장)생태운동본부와 천주교주교회의 정의구현 사제단이 각각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천주교 사제단의 경우 4대강 사업을 이명박(MB) 대통령의 탐욕으로 묘사한 선동적인 만화책을 전국 교회에 배포했다. 또한 기독교 단체도 4대강을 지어내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서 4대강 토건 사업은 분명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써 유구한 한반도 지형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고 강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을 처참하게 파괴하게 하고 종국에는 생태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기장과 주교회의가 성명을 내니 마치 천주교와 기독교 전체가 사업을 반대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 같다. 그간 종교계의 경우 사회참여는 많은 역사를 발전시켜왔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반독재 투쟁 시절엔 특히 그러했다.

기장이나 정의구현 사제단은 지난 2008년 쇠고기 수입 반대에 적극적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가운데 오래전부터 정치 활동을 전개해온 집단이다. 이번 행위도 옳게 보이지 않고 의문이 앞선다. 언제부터 종교인들이 수자원과 토목학의 영역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고 관여하기 시작했는가? 이 사업은 이미 여야가 잠정적으로 합의된 사항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4대강 사업에 반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불신한다는 뜻인가.

물론 세속적인 일이라고 해서 교회가 나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 시대라면 몰라도 민주화 시대가 된 지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 이 아닌 ‘가이샤의 일’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심한 환상의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많은 신자들이 침묵을 하고 있는 것은 그 참여 행동에 동참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분열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게 싫어서, 속된 무리처럼 서로 아웅다웅하는 저급한 집단으로 비춰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부들이 왜 저래’ ‘목사가 왜 저모양이야’ 라고 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은 있었으나 큰 소리는 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공동체가 분열되어 아귀다툼 싸우는 꼴을 보여주기보다는 참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많은 신자의 그런 깊은 뜻을 과연 사회참여 신부들이나 목사들이 짐작이나 하고 있을 지 자못 궁금하다.

분명 아닐 것이다. 오직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4대강 사업을 재앙초래로 보는 것이다. 신앙과 과학을 아주 혼동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4대강 사업도 논리와 과학의 문제다. 물 부족과 홍수 피해는 과연 얼마나 되는 지 ‘보’를 설치해도 수문(水門)이 있어 수질이 나빠지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지, 강바닥 준설의 부작용은 일시적인 것인지, 이 모든 게 수자원 토목학이 문제다. 종교인들은 수자원 토목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슨 근거로 ‘질서파괴’ ‘생태적 재앙 초래’ ‘치명적인 손상’ 이라고 판단하며 국민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물론 정부가 사업을 추진하는데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청와대나 국토해양부 어디에도 국민의 의문에 친절하게 답변하거나 4대강 살리기에 대한 홍보가 미숙했다 대통령과 고위직 관리 마저 대국민 소통보다는 일방적으로 ‘그저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따라주세요’ 였다. 아무렴 정부가 국익에 해가 되는 일을 하겠는가. 설령 정부의 자세가 잘못 되었다고 해서 과학 마저 잘못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홍보를 잘 하지 못한다고 해서 정부가 의존하는 과학과 기술이 미흡하고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단언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래서 보다 더 신중해야 옳다. 지금은 독재가 사라진 이성의 시대다. 스스로가 독재자임을 자처하기에 앞서 이성적이 되어 신중한 판단을 했어야 옳았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난데 없이 역한 쓰레기 타는 냄새를 맡게 되는 당혹스러움과 다를게 없다.

신도들은 교회에서 신부나 목사로부터 생명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 자연 이용과 자연 파괴를 구분하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지 교회의 영역은 분명 아니다. 특히 6. 2 지방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정부 사업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보이는 것은 종교인들이 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빙자하고 선동적인 만화를 제작하여 전국 교회에 배포하면서 여론 몰이에 나서는 것은 정치활동이지 교회의 가르침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된다.

종교지도자로서의 자세는 아니라고 본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환경주의와 평화주의가 좌익들이 즐겨 사용해 왔던 위장 이데오르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4대강 사업은 성명을 내기까지 하면서도 정작 북한의 인권유린, 금강산 사업 남측 사유재산 동결 등 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그들 종교 지도자들이 자의든 타의든 좌경화에 침식되고 있음을 크게 우려 한다.

오래 전 이 대통령(당시 서울시장) 이 청계천 사업을 추진할 때 보여준 충심어린 설득 노력은 감동적이었다. 이 대통령이 수십차례 상인들을 만나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지금 국민들은 그 같은 당시의 모습을 다시보고 싶어 한다.

4대강 사업은 정비는 청계천 복원보다 훨씬 민감하고 거대한 공사다. 정치적 이해까지 갈려 있는 대공사다. 그럼에도 불구 그의 장기라고 할 만큼 강한 설득의 리더십을 왜 아끼고 꺼내지를 않고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그 리더십을 국민들에게 보일 때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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