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흔드는 바람을 탓하지말자
사람들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 씩 즐거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웃을 때도 있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런 즐거움과 슬픔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누어야 할 즐거움도 함께 나누지 못할 때도 마음에 병이 생기지만 슬픔과 고통을 나누고 싶을 때도 함께 할 수 없을 땐 누구나 더 큰 외로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한 주 동안 우연하게도 대학원에서 함께 동문 수학했던 네 분의 목사님을 접하게 되었다. 두 교회는 아예 교인이 없다. 그러면서 또 다른 목사님은 암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다. 다행히 항암치료를 잘 하면 낫는다고 하니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목사님의 경우 사모가 어려운 병에 시달리고 있는데 목사마저 목에 종양이 생겨 조직검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같은 소식을 동문들에게 메일로 보내면서도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다만 헤럴드 보슬리가 “고난속에서 사람은 기도를 가장 잘 배운다”고 했듯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 뿐이다.
영국 북해에서는 청어가 많이 잡히기는 하지만 어부들이 제 값을 받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청어를 산 채로 런던까지 운반해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는데 청어의 성질이 급해 런던에 도착하기 전 모두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한 어부의 아이디어로 청어가 있는 통에 메기 한 마리를 넣었더니 많은 청어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보게 됐다. 물론 이 때도 어떤 어부는 메기를 통해 넣으면 모두 메기가 먹어버리지 않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메기가 먹는 것은 고작 몇 마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한 마리의 메기로 인해 수 백만마리의 청어들이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런던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발버둥을 치며 도망을 다닌 것이다. 메기는 청어의 생명을 위협하는 아주 무서운 존재였지만 결국 희생되는 것은 몇 마리일 뿐 메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이 많은 청어들을 살아남게 했던 것이다.
우리네 인생사도 가만히 보면 청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곧 죽일 것만 같은 고난이 수시로 첩첩산중에 어둠처럼 다가오지만 결국 우리는 그 같은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지금까지도 거친 숨을 내쉬며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도 그 같은 고난을 좋아 할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런 고난의 고통이 우리를 더욱 더 성숙하고 겸허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고난은 잘못된 길에서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며 허황된 뜻과 마음으로 교만해진 나를 겸허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 삶에 대한 가치를 간절하게도 하는 것이다. 고난은 무엇인가를 지적해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자존심 센 나를 가르치는 현장 체험의 교육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도록 나 자신을 내 맡기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팔십 남짓 인생을 살면서 작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다면 이미 그 고난은 고난이라 할 수 없다. 그래야만 그 고난을 통해 내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는 온전히 이루라” 야고보서에 나오는 말씀이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옥스퍼드대학 졸업식에서 한 유명한 연설이 있다. 많은 학생들과 축하객들이 기립 박수를 할 정도로 감명 깊은 연설이다. 청중을 향해 그가 한 연설은 “Never give up"(포기하지 마시오)이다.
재차 그는 세 번이나 반복해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비록 짧은 시간에 축사였지만 많은 이들을 감동 시켰고 훗날 이 짧은 연설을 들은 졸업생들이 사회 곳곳으로 진출해 폐허가 된 영국 재건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고난의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 된 삶을 산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 수가 있다. 존 번연은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썼고 밀턴은 눈이 멀고서야 ‘실락원’을 저술했고 베토벤 역시 청력을 상실하고 난 후에 ‘교향곡 9번 합창’ 이란 명곡을 작곡했다. 가깝게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경우 십 수년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불후의 명작들을 이 세상에 남겼다.
역사를 보면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이 더 큰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라기는 네 분 목사도 그렇고 또 사업에 실패하고, 여러 가지 명목으로 일시적인 고난이 와도 이를 축복의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받아드려졌으면 한다. 아무리 보장받지 못하는 미래의 내일이지만 그런 희망이란 내일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의 고난을 참고 견디며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 그 네 분 목사님들에게 말한다. 당신의 인생이 어쩌면 이미 여러 번 등장해왔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메기를 통해 성숙하고 견고한 청어로 살아가게 되듯 고난의 과정 속에서 더 큰 축복이 이루어지리라고. 모두가 아니라고,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말해도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지 않으면 ‘끝이 아닌거다’라고 말이다.
아름다운 가족이나 사회는 한 지체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 요즘 같은 세상일 수록 외로운 이웃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위로자.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며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때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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