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섭-친구들이여 긴 겨울을 준비하자


동문특별강좌 최태섭-친구들이여 긴 겨울을 준비하자

작성일 2012-01-27
▲최태섭(본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2012년이 오고야 말았다. 새해의 첫 주부터 우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걸출했던 2011년은 여전히 끈질기게 발목을 붙잡고, 불쑥 다가온 2012년은 올해 몫의 과업들을 재촉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 사이에 어정쩡하게 낀 이들은 2년 몫의 고통을 동시에 감내하느라 진땀을 빼고, 덕분에 신년 벽두부터 주변에는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만 가득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이 된 나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하고 비정규직이 된 이들인데 상당수가 계약만료를 맞이해 무직상태가 되었다. 몇 안되는 정규직 친구들도 상황은 좋지 않아서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하고 있거나 이미 실행한 이들이 또 상당수다. 어떤 시인은 서른을 일컬어 “잔치는 끝났다”라고 선언했지만, 오늘날 서른들의 잔치는 시작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이 2012년 마야력 종료를 맞이한 집단휴거가 아니라면, 약속이나 한 것 같은 청년들의 사회적 공중부양의 원인이 초자연적인 것은 아닐 터다. 물론 청년실업의 심각성이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들의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것들의 항목에서 일자리가 ‘단종’되었다는 사실이라는 점도 이미 많이 알려진 일이다. 정규직은 줄이고, 비정규직은 늘리면서, 고용된 사람들을 최대한 쥐어짜고, 방전되면 건전지처럼 갈아 끼우는 것이 한국의 최신식 자본주의가 일관되게 걸어온 길이었다. 자본은 기동전과 진지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웃소싱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노동을 깨부수는 데 사력을 다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피)착취냐, 해고냐”라는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같은 선택지만이 남았고, 그 어떤 것을 택하든 미래는 딱 현 정권의 도덕성만큼 부재한다.

사실 해고자나 실업자 신세를 면한다고 해도 겪어야 하는 고통의 양이 크게 덜어지는 것도 아니다. 삼성가로부터 만들어져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제1의 원리인 ‘오너권신수설’은 대·중·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기업에 대체로 적용된다. 대기업 회장에서부터 동네 상점의 사장님에 이르기까지 그날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수많은 경영지침이 내려오고, 그것이 노동법에 반한다 할지라도 굳건한 경영철학으로 돌파하는 뚝심이 발휘되곤 한다. 여기에 대체로 하청이나 아웃소싱인 중소규모의 기업들에서 감내해야 하는 ‘갑질의 횡포’까지 합쳐지면, 스트레스는 물가인상률보다도 더 높이 치솟는다. 갑에서 을로, 을에서 병으로, 그리고 정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자본주의의 ‘내리갈굼’은 중압감을 더해간다.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이런 고통들이 나의 물적이고 질적인 성장을 담보하던 시대는 지났고, 고통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며 살이 쪄가는 꼭대기와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지르는 순간 뱉어지는 껍데기들만이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청년들의 눈높이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은 단지 부자가 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이런 것을 보고 겪었던 학습효과에 가깝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미디어의 단골 소재였던 ‘직장인의 애환’이 오늘날 대다수 ‘실업자의 애환’으로 교체되었다는 것은, 직장인들이 애환을 토로하려고 할 때 그 앞에서 큰 한숨을 쉬며 “그래도 넌 좋겠다. 일을 하고 있어서…”라고 말하는 이들이 급증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2012년은 두 번의 선거와 한 번의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들이 3개나 버티고 있는 해다. 선거이슈에 포함되지 않는 사안들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무관심 속에서 버려질 것이다. 그리고 어디를 봐도 이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보다는 ‘일자리 100만개 받고 200만개 더!’ 같은 베팅소리들만이 울려 퍼질 것이 뻔해 보인다. 그러니 친구들이여 모두 준비를 하자. 맞서 싸우는 자에게도, 순응하여 살아남고자 하는 자들에게도 긴긴 겨울이 오고 있다.

[2012. 1. 4 경향신문]